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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이야기

제목영적 미몽에서 벗어나는 길2024-08-03 23:58
작성자 Level 10

영적 미몽에서 벗어나는 길

 

세상을 살다보면 참과 거짓, 선과 악을 구별하기가 참으로 힘들기 때문에 오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스도인들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판단과 행동)이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이 세상 어디에서나 참과 거짓이 함께 고속도로를 달리고, 동일한 들판과 공장에서 일하고, 한 교회에 출석하고, 같은 비행기를 타고, 똑같은 가게에서 물건을 산다. 거짓은 참을 모방하는 데 너무나 능숙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자꾸 혼동하게 된다. 오늘날 누가 가인이고 누가 아벨인지를 구별하려면 매우 날카로운 눈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건강을 해치는 것을 예민하게 경계해야 한다.

 

이삭은 야곱의 팔을 만졌지만 그것을 에서의 팔이라고 믿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자기들 중에서 배신자가 나올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것을 유일하게 알아챈 사람이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가룟 유다 자신이었다. 함께 어울리면 아주 편하고 즐거운 사람이 있다. 그는 말도 부드럽게 하기 때문에 호감을 준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때로는 사탄의 사자(使者)일 수 있다. 반면 거칠고 직언(直言)을 마다하지 않기 때문에 자꾸 피하게 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우리에게 영적 위험성과 영원한 멸망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그를 미몽(迷夢)에서 구하기 위해 마련해주신 모든 수단들을 충분히 이용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 수단들은 기도, 신앙, 꾸준한 성경 말씀의 묵상, 순종, 겸손, 진지한 사색, 성령님의 조명이다.


첫째 / 기도(祈禱)

기도가 우리를 오류에 빠지지 않게 무조건 다 지켜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기도의 대상이 중요하고 어떤 기도들은 유익은 없고 오히려 해롭기 때문이다. 바알 선지자들은 광란적(狂亂的)으로 기도하면서 심지어 제단 위로 뛰어오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기도는 전혀 응답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신(神)에게 기도했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이 기도를 드렸던 하나님은 존재하셨지만,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기를 거부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만하고 자기의(自己義)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바알 선지자들과 바리새인들의 경우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기도를 하는 데 많은 어려움들과 문제점들이 따를 수 있지만 그래도 기도는 오류를 피하고 올바른 길을 가고 올바른 곳에 머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야고보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라고 가르친다. 다른 조건들이 사도 바울은 믿음(신앙)이 ‘방패’라고 말한다(엡 6:16 참조). 신앙의 사람은 단순하게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평안한 가운데 행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드릴 때 기뻐하시기 때문에 천국의 모든 보화를 신앙의 사람에게 허락하신다.
그런데 여기서 ‘신앙’ 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의미를 분명히 짚고 넘어 가야한다. 신앙의 사람이 낙관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신앙은 낙관주의가 아니다. 신앙의 사람이 밝고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신앙이 ‘쾌활함’은 아니다. 또한 신앙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거나 사람들 사이의 교제를 즐기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성경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믿는 것이다.


셋째 / 성경 묵상(?想)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롬 10:17 참조). 성경은 우리를 정결하게 하고 강하게 하고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깨우침을 주고 지식을 준다. 복된 사람은 성경말씀을 주야로 묵상할 것이다.


넷째 / 순종(順從)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복종해야 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운전자가 안전하려면 길가에 세워진 도로표지판을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는 도로표지판의 지시에 순종하여 운전해야 한다. 성경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려면 우리는 성경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다섯째 / 겸손(謙遜)
‘진리의 인식(認識)’과 겸손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시 25:1).


성경은 절대 교만한 자의 편을 들지 않는다. 오직 유순한 양(羊)만이 목자의 인도를 받을 수 있으며, 오직 겸손한 자녀만이 하나님 아버지의 인도의 손길을 기대할 수 있다. 오직 교만한 자들만이 진리에서 떠났다. 교회를 괴롭혀온 모든 이단들 뒤에는 자신을 믿는 교만이 숨어 있었다. 이것이 교회 역사(歷史)의 증언이다.


여섯째 / 진지한 사색(思索)
우리는 사색해야 한다. 인간의 사유(思惟)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색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진리가 저장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복음주의자들은 두 진영으로 나뉘는 것 같다. 한쪽에는 인간의 이성적(理性的) 능력을 너무 믿은 나머지 이성주의에 빠진 사람들이고, 다른 한쪽은 지적인 것들이라면 모두 의심스럽게 여기면서 사색이 시간 낭비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 두 진영이 모두 잘못된 것은 분명하다. 자의식(自意識)이 너무 강한 주지주의(主知主義)는 사람에게나 하나님에게 불쾌한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성경에 나오는 중요한 계시들은 전부 뛰어난 지적 능력을 기진 사람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깊은 사색을 권하는 성경구절들을 인용하자면 얼마든지 인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그런 구절들을 열거하지 않더라도, 성경을 전체적으로 읽은 사람은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깊은 사색을 권하는 분위기를 풍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성경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성도들은 진지하고 사려 깊은 사람들일 것이라고 당연시한다. 성경은, 사색하는 것이 죄악된 것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일곱째 / 성령의 조명
성령님의 내적(內的) 조명이 없는 사색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위험스럽다. 인간의 지성은 타락했다. 배가 지도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대양을 항해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님의 내적 조명을 받지 못하는 인간의 지성은 진리, 절반의 진리, 완전한 오류가 뒤섞여 있는 대양을 가로질러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셔서 우리의 마음에 빛을 비추게 하셨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눈(眼)이 되시고, 이해력이 되신다. 우리는 결코 그분 없이 살아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

 

-A.W 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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