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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믿음은 추상명사가 아닌, 역동적인 동사입니다.2024-08-03 23:04
작성자 Level 10

믿음은 추상명사가 아닌, 역동적인 동사입니다.

 

수많은 교인들이 믿음에 대해서 참으로 오해합니다.

믿음을 추상명사로 생각하여, 믿음의 삶이 없이, 주님을 관념적으로 인정 동의만 하여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 라고 하면,

그것이 당연히 믿음인 줄 아는 것입니다.

하여, 어떤 증거도 없이...

이미 나는 회개했고, 자기를 부인했고, 주님을 영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삶을 보면... 주일에 교회 다니는 것 빼고는 바뀐 게 없습니다.

그냥 막연합니다.

그래서 말씀에 순종하냐고 물어보면 그건 행위라 하며 손사래칩니다.

그렇다면 순종하여 행하라 하신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전혀 아무 의미도 없는.. 허울뿐인 무용지물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순종하노라 하며 바리새인들처럼 순전히 자기 의를 위해 억지스런 모습만 보인다면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며 교리적인 부분을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원래 교리는 복음이 아니며, 인간의 육적 입맛에 맞도록 인본적으로 편집된 신학자들의 관념적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를 전달하고자 함이 목적입니다.

 

성경에는 순종하라는 말씀이 무려 150회가 넘게 등장함을 봅니다.

행하라는 말씀 역시 150여 회 이상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순종은 또 무슨 의미입니까...

배운 성경 지식이나 교리를 알고 그저 '믿습니다' 하면 순종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순종은 거듭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또한...

믿음은, 나를 부인하고 회개하여 거듭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거듭난 자를 통하여... 주님의 인도가 삶으로 나오는 것이 순종입니다.

이 순종은 반드시 성령께서 내 안에 오셔야 이루어지며 성령님 없이 순순한 인간의 능력과 의지로는 누구도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마태복음 19장 26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거듭난 믿음)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한1서 5장 3절)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고린도후서 13장 4절)

 

십자가를 지는 것은 내 의지와 능력으로 불가능합니다.

나를 부인하는 것조차,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절대 불가능합니다.

회개하는 것조차 내 능력으로는 단연코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왜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것을 아시면서도 회개하라, 자기를 부인하라, 거듭나야 한다, 좁은 길을 가야 한다, 십자가를 져야만 한다, 순종해라 등... 납득하기 힘든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간절히 구하고 두드리고 찾을 때... 주님께서는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그 구함이 진실이라면 회개하도록, 자기를 부인하도록, 거듭나도록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즉, 거듭나도록 도와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감(주님)을 따려고 감나무에 오르려는 자(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감을 주시겠다는 주님의 확고한 의지십니다.

그저 감나무 아래 누워 입만 벌리고 '은혜 믿음' 주문만 외우듯 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구원받을 것 같으면 구원 못받을 교인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자는 오히려 영적 나태함으로 멸망을 당합니다.

 

"나를 간절히 찾는(감을 따려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장 17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중략...........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누가복음 11장 9-13절)

 

믿음이라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난 상태의 영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곧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장 9절)

 

위 말씀처럼...성령으로 거듭나 그분이 내 안에 임재한 상태에 있다면 내 안의 성령께서 나를 통해 그분이 하시고자 하는 모든 것을 행할 것인데 이것이 바로 믿음이고 열매이며 순종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사람 기준의 인본적인 관점에서 내가 누군가를 신뢰(?)하는 상태를 믿음이라 하지 않고,

내 안에 오신 주님과 내가 일심동심체로 사는 것을 믿음이라 합니다.

그걸 또다른 표현으로 주님과의 동행이라고 합니다.

일심동체이니 그분의 뜻이, 내 뜻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하여, 그분의 뜻과 거룩한 성품(열매)이 나를 통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주님을 믿고 사랑하노라 그렇게 주장하면서도...

주님의 거룩한 모습과 그분의 뜻이 나를 통해 나오지 않고, 계속 육의 모습이 나온다면.. 그 상태는 애초에 주님을 못 만났기에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님이 안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주님이 계신다면 당연히 주님의 모습(열매)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즉,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이 생명이 되어 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 즉...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머릿속에 저장만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주님)이 나를 통해 실상에서 직접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음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 10장 17절)

 

우리는 열심히 교회에 나와 목사님의 설교를 듣습니다.

또한 성경을 읽으며 머릿속에 열심히 저장하는 걸 최우선으로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이 상태를 믿음이라 여기는 분들이 태반입니다.

위 말씀 중... 듣는다는 표현을 육신의 귀로 듣는 것으로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듣는다는 표현은 육신의 귀로 듣는 것을 말함이 아니라,

말씀이 심령과 골수를 쪼개며 들어와, 내 심령 안에 깊숙이 안착되어 그 말씀이 나를 통해 살아 움직이는 것...

그 상태를 들으면서 난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브리서 4장 12절)

 

즉, 믿음이 있다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나 나에게 전해진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며 내 삶을 통해 열매(그분이 뜻하는 것)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모든 것(열매)이 나를 통해 드러나지 않고 '입술로만 주여주여 믿음만 외치는 것'은 분명히 허상의 가짜입니다.

하여, 예수님께서는 그날에 분명히 열매를 보리라고 하신 이유입니다.

열매를 보시겠다는 것은, 그가 거듭났는지를 확인하시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열매가 없으면 거듭나지 않은 가짜 믿음이므로 밖의 어둠(지옥)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머리 용적이 넓어지는 게 아니라, 가슴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거짓 믿음은 결코 주님의 말씀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수없이 많은 말씀의 홍수 속에 살면서, 그것을 삼시세끼 끼니 때우듯 머릿속에 저장하면서도 내 삶에 변화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어찌 믿음 안에, 은혜 안에 있다고 자신 있게 주장 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과 은혜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아직도 육과 세상 안에 있기 때문에 그 세상과 육의 열매가 삶을 통해 그대로 배출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믿노라 하는 이들이 그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회는 노아의 홍수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직전 말세적 모습을 보입니까... 왜 지금 교회와 교인들은 세상으로부터 정당한 핍박을 받지 못하고 손가락질(비난)을 받고 있습니까...

입만 살아 거룩한 '척' 하고, 삶은 이방인과 다를 게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핍박이 아닌,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설교를 수없이 들으면서도 여전히 사탄 마귀가 이끄는 육과 세상의 것들을 취하며 말씀과 전혀 다른 길을 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말씀을 읽고 설교를 열심히 듣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매력적인 육과 세상 것들을 포기하길 거부하는 마음 때문에 말씀이 막혀 우리를 역사하지 못하고 거기서 말라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어도 그때뿐, 더는 안착하지 못하고 멈추는 겁니다. 즉, 이런 것이 자꾸 발목잡아 머뭇거리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누가복음 8장 14절)

 

그래서 주님은 이런 것으로부터... 돌아서도록 단호히 결단하라는 말씀을 참으로 많이 하셨습니다.

단호히 결단만 하면 너희 마음 밭을 기경하여 말씀의 씨앗이 뿌리 내려 무럭무럭 자라가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변치 않을 결단이, 바로 나를 부인하고 회개하려는 자의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기 때문에 자기 의지로 결단하지 않으면 결코 역사하지 않으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단호히 감나무에 오르려는 마음이 없는 자는 그냥 두시겠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결단하는 순간, 딱딱한 밭이 기경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말씀을 머리에 저장만 하여 구체성도 없고, 형상도 없이, 관념적이고 추상적 허상을 믿음이라 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반드시 내 삶을 통해 역사되는 실상의 동사임을 기억하십시오.

내 안에 주님이 계신다면 당연히 주님의 거룩한 모습이 열매가 되어 나를 통해 발산되는 게 온전한 믿음입니다.

믿음은 역동적인 영의 흐름이 삶으로 나타나는 살아있는 동사입니다.

입만 살아있는 추상적인 허상의 명사가 절대 아닙니다.

왜곡된 은혜만 앞세워 내 육의 모습을 철저히 가리며 말씀 따로 삶따로의 그런 것이아닙니다.

 

나는 진정 믿음 위에 진짜 바로 섰습니까?

내 안에서 세상과 충돌 현상이 일어나며, 끊임없이 이를 거부하고 주님께서 주신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억지로가 아닌... 자발적 마음이 되어 올라옵니까?

죄를 거부하며, 죄에 대하여 영적 알레르기 반응이 있습니까?

형식적 말뿐이 아닌... 진실로 나는 추악한 죄인이란 사실을 뼈저리게 인정하십니까?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았다는 찔림이 마음 깊이 올라오십니까?

주님만 바라보려는 불같은 마음이 계속해서 나를 지배하고 있습니까?

세상과 내 육의 모든 것이, 허탄한 배설물로 보여지기 시작하십니까?

주님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이 나를 이끌고 있습니까?

내 안에 또아리 틀고 자리 잡은 육의 악한 죄성이 보여지므로 치를 떨며

'오 주님 저는 어찌하오리까' 하는 마음이 아우성칩니까?

주님만 꽉 잡고 있으면, 아무리 거센 세상의 풍랑이 나를 후려쳐도 결코 휩쓸리지 않고 보호해주실 것을 굳게 믿습니까?

 

이런 마음들이 내 안에서 역동적 동사형으로 꿈틀거린다면...

그는... 거듭난 사람이거나, 거듭나기 위해 마음 밭이 주님의 은혜로 기경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진리를 아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복음의 진리가 나를 통해 실제 이루어져야 믿음 안에 있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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