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위기가 올 때 신앙의 위기는 언제일까? 은혜가 사라지면 신앙의 위기이다. 즉, 주님의 향한 애틋함이나 설레임이나 감동이 사라지면 위기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별로 문제 삼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장의 먹고 사는게 문제가 되지 않고 그냥 하나의 감정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교회를 잘 다니고 있고 직장이나 가정생활, 건강 등에 문제가 없으면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흔히 교회에서 이 주님을 향한 애틋함이나 설레임이나 감동보다는 교회출석이나 헌금, 봉사 등 눈에 보이는 것에 의미를 많이 부여하다보니 여기에 인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신앙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제대로 하는 것일까? 그것은 주님과 온전한 교제, 즉 주님과 사랑을 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주님과 이 온전한 사랑을 하는 자가 주님과 같이 살 수 있는 천국을 가고 천국에서 같이 살 것이다. (여기서 산다는 것은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사랑은 날마다의 새로움이며, 감동이며, 애틋함이며, 기쁨이다.) 사랑으로 가기 위해서 주님을 향한 애틋함이나, 설레임과 감동이 사랑의 시작의 필수 요소이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의 시작인 것이다. 그리고 존재 회복, 즉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의 시작인 것이다. 그리고 이 관계의 완성은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에서의 사랑이다. 이 사랑이 신앙의 전부일 것이다. 이 애틋함과 설렘과 감동은 주님을 만난 사람은 한번씩은 다 경험한다. 이것이 신앙이 살아있고 성장하는 동기부여이며 힘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왜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죄' 때문이다. 죄라고 하면 너무 포괄적이니까 구체적으로 말하면 상처에서 생긴 열등감, 여기서 비롯되는 집착, 미련, 그리고 음란, 시기, 질투, 미움, 게으름, 욕심, 판단 등 많이 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하나님 두기 싫어하는 상실된 마음에서 비롯되는 구체적인 죄의 열매이다. 은혜가 오면 감동과 설레임, 애틋함, 기쁨 등 좋은 것과 동시에 죄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은혜가 오면서부터 신앙이 시작되는데 동시에 죄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죄인이라고 느끼면서 주님의 그 십자가의 사랑에 대해 감동하고 사랑하고 행복해한다. "주님이 이렇게 날 사랑하시는구나"라는 마음은 특히 상처가 많은 사람일수록 더 크게 다가온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크게 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은혜와 사랑으로 다른 이를 사랑하고 은혜를 베풀면 좋은데 정작 그렇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나의 존재가 하나님의 형상에서 죄로 인해 형편없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 안에 있는 욕심, 자랑, 시기, 질투, 미움,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것들, 이러한 것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것으로 인해 우리의 삶 속에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고 상처를 받는 것이다. 단지 잘 모르고 그냥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이 없으면 표면적으로 문제가 안되면 관계가 단절되어 있지만 그냥 넘어간다. 하지만 이 존재의 회복과 함께 주님과 관계를 개선해 가야 하는데, 여기에 필요한 것이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에서 오는 설렘과 감동과 애틋함이다. 이 애틋함과 설렘과 감동,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내 안에 있는 더러운 죄들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이 싸움은 반드시 치열하게 싸워서 승리해야 한다. 이 죄를 반드시 없애야만 존재의 회복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태복음 4장 17절에 맨 먼저 하신 말씀이 바로 '회개하라'이다. 그리고 누가복음 7장 40~50절의 빚진 자의 빚 탕감 이야기에서 보면 많이 사랑하는 자가 많은 사함을 받는다고 말씀하신다. 은혜가 강하게 오면 많이 사랑하려고 합니다. 회개와 사랑을 많이 하다 보면 그만큼 죄가 떨어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이 부분까지 나아가려면 늘 주님을 향한 애틋함과 감동과 설렘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내가 교회 출석을 많이 하고 헌금을 많이 내고, 봉사를 많이 하는 이런 외적인 것들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다.
은혜를 붙잡고 가슴 찢는 회개를 통해서 그리고 은혜를 붙잡고 죽도록 사랑하다 보면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위기에서 진전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