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둠의 저주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잠언 29:15)
채찍과 꾸지람이 현대의 인권 개념과 교육 이념에 얼마나 동의가 될까? 자식의 죄에 대하여 징계하라는 말씀이 얼마나 무거운 말씀인가? 징계가 주는 어감에서 오늘날 인본주의는 저항하지 않을까? 세상에 살면서 성경을 따라야 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잠언의 말씀은 많은 고민을 하게 한다.
인간은 본질적 부패함에 대하여 부정한다. 얼마든지 교육을 통하여 선하게 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래서 인권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왜곡한다. 인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죄인 된 형상임을 인식한다. 죄인 됨에 대하여 인식하지 않는 인권은 많은 오류를 가질 수 있다. 현대의 실용주의 교육은 더 나은 삶에 대한 추구만 하지 인간 본성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는다.
가장 불행한 사회는 각자가 임의로 살게 내버려두는 공동체다. 옆에서 죽어가도 간섭하면 귀찮아지니까 관심을 끊으라고 한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현대 인권 개념의 오류에서 나왔다. 철저하게 개인의 권리는 강화되지만 이웃의 권리는 방치된다.
버려둠을 당하지 않는 것이 행복이다. 죄에 대한 징계는 생명이다. 과정은 힘들어도 결과는 기쁨이 된다. 물론 이 징계의 기준은 분명하다. 말씀이 기준이다. 말씀이 없으면 방자하게 된다. 말씀이 기준이 될 때 서로가 인정하게 된다. 자식만 아니라 종도 동일하다. 알아도 고치지 않는 것이 죄인의 특징이다. 말씀이 들려져야 하고, 말씀에 따라 징계가 있어야 한다.
징계는 분풀이가 아니다. 화풀이하는 것은 다툼과 분쟁만 일으키지 변화와 기쁨을 가져오지 않는다. 겸손과 사랑으로 징계하지 않으면 결코 변화되지 않는다. 이미 자신의 영혼을 미워하는 자는 저주를 들어도 반응하지 않는데 하물며 분풀이 한다면 회개하겠는가?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사랑과 겸손으로 대할 때 변화는 온다.
사랑과 겸손으로 대할 때 사람을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에 순종 해야 한다. 이때 악인에게는 미움을 받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된다.
임의로 내버려두는 것은 가장 큰 저주다. 복음을 전하여도 듣지 않고,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자에게 주어진 가장 큰 저주는 바로 내어 버려둠이다. 사랑은 최선을 다하여 죄에 대하여 지적하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고, 조급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리로 인도한다. 버려두는 것, 마음대로 살라고 포기하는 것은 가장 큰 슬픔이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로마서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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