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가면 쓴 예수쟁이와 진짜 예수따르미2024-08-25 00: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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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쓴 예수쟁이와 진짜 예수따르미
가면 쓴 예수쟁이로서의 내가 전념한 것은 오로지 얼굴 단장이었다. 그리고는 단장된 나의 얼굴에 스스로 자부심을 가졌다. 그야말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정하는 자였던 것이다. 확실히 나는 겉으로만 의인처럼 단장된 나의 얼굴에 스스로 기만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정말로 속마음까지 단장한 진짜 예수따르미인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이제 내 꼴이 진짜 예수따르미와는 너무도 다름을 발견하였다. 가면 쓴 예수쟁이와 진짜 예수따르미, 겉 다르고 속 다른 예수쟁이와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예수따르미-- 이 둘은 얼마나 대조적인 크리스천유형인가.
이제 이 둘을 대조하는 그림을 비교해 본다. 예수쟁이는 얼굴을 단장한다. 그러나 예수따르미는 속마음을 단장한다.
예수쟁이는 단장된 얼굴 모양을 입 대변인으로 선전한다. 그러나 예수따르미는 단장된 속마음 모양을 행동 대변인으로 선전한다. 예수쟁이는 사람들의 귀에 선포하여 지식을 얻게 한다. 그러나 예수따르미는 사람들의 눈과 마음에 호소하여 아름다움과 선함으로 감동 받게 한다.
예수쟁이의 속마음은 오만과 권의의식으로 가득 찼으나, 겉으로는 겸손과 경건을 보여준다. 그러나 예수따르미의 속마음은 신뢰와 헌신으로 가득 찼으며, 겉으로 기쁨과 희망을 보여준다. 예수쟁이의 속사람은 자기자랑과 욕망으로 가득 찼으나, 겉으로는 겸허한 모양을 보여준다. 그러나 예수따르미의 속마음은 사람 아낌과 이웃 높임으로 가득 찼으며, 겉으로 종교의 능력을 보여준다.
가면 쓴 예수쟁이와 진짜 예수따르미는 이처럼 대조적인 크리스천들이다. 하나는 겉모양이, 그리고 또 하나는 속마음이 아름다운 크리스천이다.
이들은 일상생활에서 예수님의 제자 역할을 할 때에 더욱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들의 사랑과 봉사정신의 표현, 즉 사람 돕기 생활양상이 이를 확실히 보여준다. 가면 쓴 예수쟁이는 이웃을 입으로 돕는다. 그러나 진짜 예수따르미는 이웃을 손과 발로 돕는다. 예수쟁이는 사람들을 돕되 그들이 자기의 은혜와 관용에 의존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입의 말의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예수따르미는 사람들을 도울 때 그들이 스스로 서게해준다. 그리하여 행동의 열매의 칭찬을 받는다.
예수쟁이는 이웃 영혼의 필요요구 호소를 무관심, 핑계, 그리고 비난으로 대응한다. 그러나 예수따르미는 아낌, 도움, 그리고 수용으로 대응한다. 예수쟁이는 사람들을 의로운 겉모양(종교의 껍질들)에 따라서 두 그룹으로 양분한다. 우리와 같은, 의인들과 우리와 다른, 악인들의 두 배타적인 그룹으로 구별한다. 그리고는 우리와 다른, 악인들에게는 비난과 무관심으로 대하며, 그들의 필요에 둔감하다. 그러나 예수따르미는 필요충족 과정에 따라서, 사람들을 돕는 우리와 도움이 필요한 너희들로 양분한다.
그리고는 도움이 필요한 너희들에게 관용과 친절을 보이며, 그들의 필요에 민감하다. 예수쟁이 사회에는 구호대상자가 늘어나며, 수심에 싸인 얼굴들의 공동체가 되어간다. 그러나 예수따르미의 사회는 구호봉사자가 늘어나며, 기쁨에 찬 얼굴들의 공동체가 되어간다.
나의 의로운 얼굴 때문에 나는 내가 살던 지역사회에서 좋은 이웃이 되지 못했다. 나는, 내가 같이 살기 때문에 더욱 살기 좋은 지역사회가 되도록, 나의 지역사회를 효과적으로 돕지도 못했다. 오히려 나의 의로운 얼굴 떄문에 나는 모든 사람들이 필요한대로 도움을 얻는 아름다운 사회를 건설하는 일에 거침돌이 되었었다.
나, 나의 교회, 그리고 나의 종교는 우리가 사는 지역사회에서 정말로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셨기 때문이다. 만일 좋은 이웃이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죄인들의 친구이셨던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가짜 제자들이 아니겠는가.
예수님, 저에게 예수님의 교훈을 바로 듣는 귀와 주님의 모범을 바로 보는 눈을 주셔서, 예수쟁이의 상태에서 진정한 예수따르미로 거듭나게 하옵소서. 주여, 이 자식을 불쌍히 여기소서. (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