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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신앙을 방해하는 쓴 뿌리의 원인과 제거방법2024-07-30 16:19
작성자 Level 10

신앙을 방해하는 쓴 뿌리의 원인과 제거방법

 

쓴 뿌리라는 말을 종종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쓴 뿌리는 마귀가 매우 즐겨 이용하는 공격 방식인데

여기에 한 번 걸리면 이는 견고한 진과 같아서

좀 해서는 빠져나오기 정말 힘듭니다.

 

이 쓴 뿌리는 분노를 동반하고, 미움을 양산하며,

자격지심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서 늘 불만 가운데

다른 이들과 나를 비하하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인본적인 단어지만 자존감을 확 떨어뜨려서

성격이 상당히 예민하고 공격적으로 반응하며

남들이 내게 하는 말 하나하나에 그냥 안 넘어가거나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어떤 맘에 안 드는 것이 자주 눈에 띄어

그것을 참지 못하는 현상이 있게 됩니다.

또한, 나를 비하하는 말인지 분석하려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람의 장점보다 단점을 자꾸 보게 됩니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자신과 상대방이 서로 괴로워하는 현상이 지속됩니다.

 

학창시절 보면

특별한 이유도 없이 옆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자신은 거침없이 행동하면서 남들이 자신에게 똑같이 하면

이를 못 참고 이기적인 공격적 성향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는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그대로 이어지는데

늘 외톨이처럼 혼자이고 스스로도 주변 사람에게 접근하는 것을

꺼리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결혼해도 그대로 그 현상이 유지되기도 합니다.

무엇에 집착하는 현상도 나타납니다.

이런 거 아닌가? 저런 거 아닌가? 하는 편집증도 가끔 나타납니다.

조그만 흠도 참지 못하는 결벽증세도 자주 나타납니다.

정죄 판단하는 증세도 자주 나타납니다.

강박증세도 찾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쁨이 없이 우울한 마음이 지속적으로 계속됩니다.

지금의 현실에 동의하지 못하여 견딜 수 없으므로

자살까지 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어린 시절을 너무 심할 정도로 피폐하게 보내면

마음이 확 무너져서 귀신이 들어간다든지,

그로 인하여 귀신이 보이고 영적 어떤 것들을 보고 듣는

이런 괴로운 현상이 찾아오는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많은 분들을 상담하고, 주변을 통해 경험했던

일을 종합적으로 취합한 결과입니다.

 

이런 쓴 뿌리가 생기는 원인을 추적해보면...

어린 시절 한창 성장할 나이에 정신적인 충격이 원인이 됩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당하므로 인하여

이를 견디지 못하여 그게 기억 속에 지울 수 없도록 박혀버립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심한 인격적인 모독이나

매질을 당하여 감당할 수 없는 수치심을 주게 되거나,

부모가 술에 자주 취하여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거나,

아이들 앞에서 부부싸움 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면

아이들은 부모에 대한 상처로 좋지 못한 마음 상태로 성장합니다.

이것이 마음에 누적되면 부모를 원수의 대상으로 보게 됩니다.

이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도

주변 사람을 부모와 같은 선상에 올려놓고 비슷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예를 들면...

결혼한 상대자를 과거 겪었던 부모와 같은 연장 선상에 놓고

오버랩해서 본다든지

어린 나이에 성폭행을 당하는 엄청난 일로 인하여

여느 정상적인 남자들만 봐도 죽이고 싶도록 미워지고,

결혼 자체를 안 하려고 하며, 결혼을 해도

정상적이고 자신을 이해하며 사랑을 베푸는

따뜻한 상대를 만나지 못하면 온전한 가정을 이루기 힘듭니다.

결국, 거의 대부분 이혼으로 이어져서 혼자가 됩니다.

또한, 사회생활에도 적응을 못 하여 참 힘들어합니다.

드물게는 어른이 되어서도 담임목사의 큰 비행을 보고

충격을 받아 목사라는 것 그 자체를 불신하거나

매우 비판적이고 경멸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러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는 데 매우 애를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큰형님 밑에서 자랐는데

형님의 자식들을 대하는 것과 동생인 저를 대하는 것이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노골적인 핍박에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또한, 천사 같은 어머니가 큰 형님으로부터 구박받고

눈물 흘리는 것을 두 눈으로 계속 지켜보면서 성장했기에

마음속의 한으로 남아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거치면서 성장하다 보니 저는 말수가 줄어들고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않고 피하려는 습성이 배었습니다.

자존심만 강해지고,

남들이 저에게 뭐라 하면 그것을 공격적으로 분석하고 받아들여

또 혼자 힘들어하는 현상이 계속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주님을 제대로 만나고서야

확 눈 녹듯 해결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이들이 성장할 때는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아이들의 감성은 생각 안 하면서 부모들 개인의 성격대로

함부로 대하면서 애들이 잘 크길 바라면 안 됩니다.

아이들은 보고 들은 대로 자라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이런 쓴 뿌리는 결국, 어린 시절

따뜻한 사랑을 못 받고 오히려 비난과 구박, 폭력 속에서

자란 것이 가장 큰 원인이 됩니다.

온전하게 사랑을 받고 성장했다면 명랑하고 긍정적으로 살았을 터인데

그와 반대로 늘 분노하며, 부정적이며, 공격적인 성향이 되는 것입니다.

남들이 하는 별것 아닌 말도 분노하여 뭐라고 되받아치는 그런 것...

자신은 이런 것이 문제임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조절이 잘 안 되어 마치, 몸에 낙인이 찍힌 듯

지워지지않는 정신적 흔적으로 남아있는 쓴 뿌리...

그리고 이와 반대로 지나치고, 비상식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을 받으며

성장해도 자신만 아는 이기심이 극에 달하는 쓴 뿌리가 형성됩니다.

이런 이기적인 쓴 뿌리의 소유자는 주변에 많은 민폐를 끼치게 됩니다.

이 쓴 뿌리를 해결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뭔가 허전함이 올라오고 중간에 붕 뜬 느낌의

이도 저도 아닌 상태 같은 신앙을 가지게 합니다.

신앙생활에도 큰 걸림돌로 작용하기에 참 괴롭고 힘듭니다.

저는 이런 과정을 직접 겪었고, 주변에서 봐왔기에

특별한 지식이 없어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뭔가 순탄하게 가는 듯 하다가도

과거의 쓴 뿌리에 발목 잡혀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또 원위치 되는 그런 현상...

이런 것을 격지 않은 분들은 그 힘든 심정을 이해 못 합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남을 사랑 할 줄 알고,

미움을 받아본 사람이 남을 미워하고 분노하게 됩니다.

 

성인이 되어 철이 좀 들었기에 이를 감추려고 나름 노력은 하지만

진심이 아닌 위장하는 듯한 형식으로 노력하기에

돌아서면 너무 힘들고 허망하고 괴롭습니다.

기쁜 척은 있지만 진정한 기쁨이 없습니다.

늘 우울함의 어두운 그림자가 자신을 지배합니다.

그러기에 부모의 폭력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자신은 부모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지 굳게 다짐하면서도

어느샌가 자신도 모르게 부모와 똑같은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도 믿는 사람들은 초인적인 힘으로 이것을 억제하며

버티지만, 신앙생활 그 자체는 참 힘이 듭니다.

 

그렇다면 이런 쓴 뿌리를 없애야 하는 숙제가 남습니다.

이런 쓴 뿌리는 원인 제공자가 풀어야 가장 원활하게 풀립니다.

예를 들면...

폭력적이던 부모가 자식을 안아주며 눈물로 사죄한다든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다 풀리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 폭력적이고 구박하는 부모는

그 역시 쓴 뿌리가 강하여 좀 해서는 감싸 안으며

사랑 표현을 거의 못 합니다.

또는 형제끼리 이런 쓴 뿌리가 있다면 그 원인 제공자인

형제가 직접 사과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표현을 한다면

바로 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이례적이지만 성경을 읽다가 어떤 말씀에 신선한 충격을 받고

눈물이 쏟아지면서 극복해지는 은혜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집안 내력으로 흐르는 이런 쓴 뿌리를

신앙으로 극복하지 못하면 계속 쓴 뿌리가 후손에게 대물림되고

악순환의 고리는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이를 끊어내야 합니다.

주님께 매달리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 사라짐을 알게 됩니다.

주님을 아는 사람들은 사람에게 분노하고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 미움과 분노로 인하여 신앙생활 자체에 문제가 생깁니다.

억지로라도 용서와 사랑과 긍휼함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내가 증오의 대상을 미워하고 분노한들 그 분노의 크기가

설마, 자신이 미워하고 증오하는 쓴 뿌리의 제공 대상이 지옥에 떨어져서

극도의 공포 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는 것보다 더 크겠습니까?

그 대상들 역시 돌이키지 않으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데

그들이 불쌍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들을 향한 증오와 분노 미워하는 마음을 거두면 욕심일까요?

믿는 사람이라면 상대의 반응을 기대하면 안 됩니다.

그냥 내 할 일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를 용서하고 사랑했으니 그도 나와 똑같이 해야 한다고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그건 여느 이방인들이 하는 행위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상대의 반응에 신경 쓰지 말고,

그저 주님으로부터 배운...

사랑하는 마음을 베풀기만 하면 됩니다.

용서하는 마음을 베풀기만 하면 됩니다.

긍휼한 마음을 베풀기만 하면 됩니다.

오른뺨을 맞으면 반대편을 돌려대야 하는 게 믿는자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랑과 용서를 몸소 실천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믿음은... 아무 대가 없는 희생과 사랑과 용서가 있어야 합니다.

억울해도 그냥 일방적으로 주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십시오.

내가 먼저 다가가야 상대도 문을 열고 다가옵니다.

먼저 다가가는 사람이 더욱 큰 사람이고 하늘에서 큰 자입니다.

주님은 그런 모습을 다 보고 계십니다.

이렇게 몸소 미움과 분노를 거두고 상대를 사랑하면서

주님께 매달리십시오.

주님은 이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성령으로 거듭나

견고하게 집을 짓고 버티고 있는

거대한 쓴 뿌리를 말끔하게 제거해주실 것입니다.

 

원수진 사람을 당연히 원수로 여기고,

사랑할 사람만 당연히 사랑하고,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당연히 용서 안 하고,

미워할 사람을 당연히 미워하고,

이는 주님을 모르는 이방인이 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쓴 뿌리가 해결 안 되는 근본 이유는

내가 모든 걸 내려놓고 먼저 나서지 않으면서

쓴 뿌리의 제공자가 먼저 나에게 와서 용서를 구하며

해결해주길 기대하는 본능적 심리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믿는다고 하는 우리는 이방인들과 달라야 합니다.

사랑하지 못할 사람을 사랑해야 하고,

용서하지 못할 사람을 용서해야 하고,

아무 대가 없이 내 사랑을 내어드리는 것이

주님을 아는 사람이 해야 할 도리입니다.

믿는 사람은 받는 것에 익숙하지 말고,

주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상대의 변화로 내가 변하려고 하지 말고,

내가 변화됨으로 상대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이

믿는 자의 올바른 지혜입니다.

대가 없는 용서와 사랑은 원수조차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과 용서는 주님께서 개입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다가가십시오...

자존심을 태워버리십시오.

상대가 내 기대와 다르게 반응해도 거기에 동요되지 마십시오.

그저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치신 것만 하면 되는 일입니다.

주님은 이런 모든 상황을 계속 지켜보실 것입니다.

그 정성과 노력에 기뻐하시며

성령님을 보내셔서 진정한 기쁨과 소망을 누리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쓴 뿌리의 제공자도

당신의 사랑으로 인하여 변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쓴 뿌리는 그렇게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인내하십시오.

소망을 가지십시오.

주님께서 반드시 보상하시고 기쁨으로 안아주실 것입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복음 5장 44-48절)

 

왜 원수를 사랑하며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을까요?

믿는 사람은 원래 그렇게 해야 믿는 사람처럼 보이니

그리 하라고 하신 걸까요?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역사하는 힘이 매우 강하기에

그리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는 사람에게

주님께서 직접 역사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강력한 약속입니다.

이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 복이 있고 역사가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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