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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이야기

제목이분적 논리로 영의 일을 생각하지 맙시다2024-07-30 15:14
작성자 Level 10

 이분적 논리로 영의 일을 생각하지 맙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하나님을 무척 제한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서방 세계의 철학적 사고구조에 물들어가면서 이분적 논리로 모든 것을 보려는 태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심하게는 ‘흑백논리’로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이런 이분적 흑백논리가 장려되어 왔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플라톤주의에 영향을 강하게 받은 서양의 사고체계는 명확하고 논리적인 것을 추구하게 되었고, 그 결과 동양의 모호한 사고 체계는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서양이 이분적 사고를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현대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동양의 사고는 시원적이며 신비적입니다.

히브리인들은 동양인이므로 그들의 신관은 시원적이며 신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에 관한 그들의 생각은 복수였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항상 “우리”라는 표현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사단과 하나님을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사단은 적어도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 안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은 사단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하여 악의 대상으로 지목했습니다. 기독교 교리 가운데 ‘삼위일체’는 서방 기독교가 풀 수 없는 숙제였고 지금도 그들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까닭은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명확하게 구분하여 놓아야 하는 이분적 철학 체계 때문에 스스로 한계를 느낍니다.

동양의 사고구조는 시원적이기 때문에 분화를 추구하지 않으며, 신비적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동양이 논리보다는 믿음을 강조하는 까닭입니다. 우리가 서양의 사고 체계에 물들어 모든 것을 이분적으로 나누어 생각하려고 한 까닭에 영의 일에서도 그런 오류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성(聖)과 속(俗)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였다고 할 때 말하는 세상은 성속으로 구분하여 성에 속한 부분만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수도 사랑하라고 할 때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우리는 착한 영과 악한 영으로 영의 세계를 구분하고 그들은 절대적으로 다른 차원일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실질적으로 예를 들면, 신령한 은사를 받은 사람과 무속인들이 근원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에 의해서 예언하거나 방언하는 기독교적인 것과 무속인이 하는 점치는 것과는 뿌리부터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들 둘 사이의 차이점은 방법과 목적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나 근원적인 문제에 있어서 이 둘은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능력을 제공하는 배경이 되는 영적 존재의 시원이 같기 때문입니다.

사단과 천사는 원천적으로 같은 종류입니다. 이들이 창조될 때에는 다 같은 목적이었고, 같은 기능으로 창조된 피조물이었기 때문입니다. 타락 전에는 같은 일로 하나님을 섬겼으며, 같은 능력으로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가 반란을 일으켰고, 그들이 쫓겨나서 공중으로 몰려 나왔지만 그들은 본질적으로 천사였으며, 그 능력으로 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무속인들을 주관하는 악한 영은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천사들이며, 따라서 그들과의 영적 접촉은 다른 선한 천사들과 접촉하는 방법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으로 차이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단은 천사들과 다른 점은 그들 마음속에는 반역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생각을 그들이 드러내지 않을 때 즉 광명한 천사로 위장하고 있을 때 우리는 절대로 구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환상을 보고 천사를 만나는 경험이나 무속인들이 경험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방법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 교단이나 종파에 따라서 다른 것은 대상인 하나님이 아니라 방법입니다. 또 기도하는 방법도 목적에 따라서 다릅니다. 이미 설명한 것인데, 영적 존재와의 만남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영적 신호가 있다는 점에 관해서 언급했습니다. 무속인들은 휘파람 소리나 새 소리 같은 소리를 냅니다. 이것이 그들이 자신에게 임하는 영과 맺은 신호입니다.

무속인들은 이미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우리는 너무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불로 불로’라는 반복적인 단어를 외치는 정도입니다. 근래에는 ‘입김을 불기’ ‘손을 뻗기’ 등의 동작입니다. 고전적인 방법은 안수와 찬양입니다. 우리는 이런 몇 가지 고전적인 신호를 가지고 있는데 오늘날은 다양화되고 분화된 시대입니다. 우리들에게 임하는 천상의 존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다양하고 전문화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한국에서 예언사역을 한 세계적인 예언자 신디 제이콥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천상의 소리를 하나님으로부터 제공 받았고 그 소리로 찬양할 때 설명할 수 없는 영적 사건이 일어났다’고 컨퍼런스 첫째 날에 증거했습니다. 이 목소리는 그녀가 오래 전부터 주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것이며, 이 톤으로 경배할 때 말로 다할 수 없는 기름 부음을 경험한다고 말합니다.

사역자마다 독특한 영적 신호 체계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영적 존재와의 신호체계인 것입니다. 이 신호 체계는 원론적으로 천사나 사단이나 같은 것입니다. 영적 존재 각각이 지니는 신호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이 체계만으로는 천사와 악령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오직 그 목적 즉 열매로 구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분적 논리로 보아왔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손실을 자초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태도가 “하나님은 말씀이시다”라는 성경말씀을 이분적으로 다루는 장면에서 여실히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설명할 때 말씀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필요조건은 될 수 있지만 충분조건은 될 수 없습니다. 말씀 안에는 기록된 말씀, 계시, 묵시, 예언, 설교, 가르침, 꿈과 환상, 천사와의 만남, 기사와 이적, 세상 학문과 지식 정보 등을 포함합니다. 즉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벗어나서는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록된 성경 말씀만을 말씀으로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편협한 울타리에 갇히게 됩니다. 기록된 성경말씀은 본질이신 하나님을 알게 하는 가장 정통적이고 바람직한 수단입니다. 예수께서 자신이 하는 말이 영이라고 설명했을 때 그는 임의로 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 또는 본 것을 말하기 때문에 본질적이라는 의미를 담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그 영으로부터 왔고 또한 본 것을 이야기하는 이 말은 영적이며, 동시에 영이신 하나님의 본질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한적으로 보는 시각으로 문자만을 강조하고 그 밖의 다른 현상들에 대해서 거부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는 결과가 되며 아울러 사단의 계략에 속는 것입니다. 무속인들은 영의 일에만 관심이 있을 뿐 말씀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교리적인 기독교인들은 말씀에만 관심이 있을 뿐 영의 일에는 무관심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악령의 일이라고 단정해버립니다.

무속인들은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예수를 믿는 사람인지를 정확히 압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이 말하지 않으면 무속인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을 저들은 압니다. 그들의 능력이 아니라 귀신의 능력이지요. 우리에게는 우리를 돕는 천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천사를 통해서 어떤 구체적인 유익을 얻고 있습니까? 물론 영적 존재로부터 어떤 구체적인 유익을 얻지 못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쉬운 예로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데, 그 속에는 다양한 기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로지 통화기능과 문자기능 정도만 알고 사용합니다.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은 게임기능, 카메라기능, 알람기능, 동영상기능, 인터넷기능, 전자수첩기능, 모바일 기능 등 수많은 기능을 활용해서 유용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핸드폰이 없는 생활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신디 제이콥스나 짐 골이나 숀 볼츠 등을 비롯해서 많은 예언자들은 그들에게 예언을 제공하는 천사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아마도 천상의 존재와 접촉하지 못한다면 지금과 같은 그런 탁월한 예언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들은 각각 설명은 하지 못하지만 나름대로의 영적 접촉을 이루는 독특한 신호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미 앞의 글들에서 방언이 영적 신호체계의 가장 일반적인 수단이라는 점을 설명했습니다. ‘트힐라’와 같은 신령한 노래나 ‘요가’와 같은 영적 스트레칭 역시 신호체계입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무속인들이 먼저 알고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방법인데도 불구하고 무속인들이 사용하고 힌두교에서 사용한다고 해서 우리들은 전적으로 무시해버렸습니다. 이것이 사단이 노리는 속임수일 것입니다.

수단의 근본적인 것은 같습니다. 그러나 목적에 따라서 변형되었다는 점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무속인이나 힌두교나 불교에서 행하는 요가나 선수행 등과 같은 방법은 그대로 따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방법은 그들을 지배하는 악령과의 약속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께서 지시하시는 방법을 배우고 개발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컴퓨터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컴퓨터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돈을 악한 것으로 보는 것은 큰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저들이 가지고 있는 돈을 빼앗을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지금 사단이 사용하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것을 외곡시키고 그릇된 목적에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본질을 외면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영적 존재와의 만남의 수단들에 관해서 우리는 너무도 모르며, 그 우선권을 사단에게 내어준 꼴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찾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적인 일에 있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며, 빼앗긴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꿈과 환상은 오랫동안 사단에게 빼앗겼던 대표적인 영적 기능입니다. 이 꿈과 환상을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의 주된 수단임을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고전적인 사람들이 우리 곁에는 많습니다. 방언을 무익하다고 여기고 전혀 하지 않으려는 답답한 사람들이 아직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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