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양과 질 모두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저를 만나면 흔히 하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는가라는 물음입니다. 기도의 양과 질의 문제는 실제로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이 두 요소의 균형을 찾기란 말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기도의 양보다는 질에 대해서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양보다는 질이 중요한 것은 원칙적으로 올바른 지적이지만 질 높은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많은 양의 기도를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훌륭한 선수가 좋은 경기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들은 피나는 연습을 합니다. 짧은 시간에 멋진 경기를 보여주어야 하는 선수들은 그것을 위해서 수백 배에 달하는 시간을 연습에 투자합니다. 이렇듯이 기도도 역시 훌륭한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동안 기도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시간과 질의 문제는 결코 다른 차원이 아니라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기도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거나 거듭남을 경험한 후 기도에 대해서 맛을 알기 시작한 사람의 경우에 장시간 그리고 오랫동안 꾸준한 기도를 경험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기도로부터 시작하고 기도로 끝이 나는 것인데, 이 생활이 어느 한 순간 확 타오르다가 꺼지는 불과 같아서는 안 됩니다. 평생 꾸준하게 유지되어야 하는 인내의 싸움이며, 그 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날도 있고, 괴로운 날도 있습니다.
흥분하는 때도 있고, 실족하는 때도 있기 때문에 이런 과정에서 생존하게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는 가장 원초적 수단이기 때문에 기도를 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가 전문가의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전문가로부터 배우면 전문성이 생기지만 그렇지 못하면 동내수준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하지만 그들의 기도가 무미건조한 까닭은 전문적인 기술을 익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도에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습니다. 이런 방법들이 몸에 익숙하기까지는 오랜 세월동안 많은 양의 기도훈련이 필요합니다. 꾸준히 그리고 오래 기도하는 습관이 생겨야 합니다. 어떤 효과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단순히 기도의 시간에만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는 인내하는 법을 배우는 공과이기 때문입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약 5:11). 또한 인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수단입니다(눅 8:15).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계 3:10)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우리가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배경도 인내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가장 소중한 인내에 관한 지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철야기도, 세 시간 기도, 침묵기도 등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철야기도나 3시간 기도는 기도 방법을 모르면 하기 힘든 기도입니다. 여러분들은 구성으로 기도하기 시작하면 십 여분이 지나면 기도할 내용이 다 떨어져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더 많은 시간을 기도할 수 있겠지만 이 역시 한 시간 정도 하면 지루하게 느껴져 견디기 힘듭니다.
말을 해야 하는 구성 기도는 1시간이 지나면 힘들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기도의 영이 사로잡아서 기도를 이끌어주는 경우에는 아주 손쉽게 오랫동안 기도를 할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예외적이기 때문에 기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도의 영에 이끌려서 깊은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며, 행복한 기도가 됩니다. 우리가 기도에서 이런 영의 이끌림에 의한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기도할 때마다 종종 나타난다면 그 사람은 기도의 깊은 단계에 이르렀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처음 기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람의 경우 맛보기판으로 이런 영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맛 때문에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내를 배우는 기도는 오랜 시간의 삭막함을 통과해야 합니다. 일방적인 고백에 불과한 것 같은 지루함이 있습니다. 자기만의 독백이라는 생각 때문에 기도할 힘이 빠집니다. 하나님이 듣고 계신다면 응답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이 자신만의 일방적인 기도에 흥미를 잃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의 기도는 이런 갈등을 통해서 기도의 의미를 묵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말을 많이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갈등으로 들어가면서 그 내용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많을수록 기도는 혼란해집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것들은 기도할 때마다 기도의 힘을 빼는 작용을 합니다. 이런 고삐 풀린 생각들(monkey thoughts)이 정리되기까지는 역시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생각이 차츰 어떤 질서를 잡아가게 되면서 기도를 방해하는 것들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가지런히 정리되는 것은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행위를 ‘다림줄 학습’(plumb-line discipline)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다림줄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정리가 되는데, 이 과정은 성령의 감동을 입어서 이루어진다고 믿어야 합니다. 기도는 고백과 묵상으로 이루어집니다. 고백은 하고자 하는 말을 주께 아뢰는 과정이며 이것이 끝나면 떠오르는 생각을 가지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생각을 정리하자면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3시간의 기도는 고백, 방언기도, 묵상의 순서로 이루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기도의 영이 임하여 주장하게 되면 때로는 고백으로 모든 시간이 끝날 수도 있습니다. 성령이 이끌어주시는 그런 기도가 가장 이상적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이 기도를 행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의 효과를 얻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기도를 전혀 배우지 못한 채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주먹구구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들은 성경공부에는 목소리를 높여서 강조하지만 기도공부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체계적으로 훈련을 필요로 하는 고도의 기술적인 작업입니다. 많은 영적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 다양한 기도를 경험하도록 했습니다. 성경에는 주님이 제자들에게 별도로 성경공부를 시켰다는 직접적인 내용은 없지만 기도를 가르쳤다는 말씀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말씀을 설명해준 것이 성경공부라고 할 것입니다. 주님 자체가 말씀이시니 특별히 말씀 공부라는 형태를 취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주님과 함께 하는 그 자체가 성경공부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주님과의 대화는 말씀 공부이자 기도입니다. 주님과 대화하는 것이 기도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볼 때 주의 제자들은 끊임없이 주님과 대화했다는 점에서 그들은 기도를 항상 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들에게 기도 방법을 가르쳐주셨고, 함께 산에 올라 밤이 세도록 기도하는 훈련을 시켰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성경공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기도공부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성경공부를 앞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성경공부와 기도공부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성경공부 1시간을 했다면 기도공부도 1시간을 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성경공부는 기도를 위해서 있는 것이고, 기도는 성경공부를 위해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둘은 절대로 따로 놀 수 없고, 분리해서 행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가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가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체적으로 따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기도는 훈련이 필요하고 그 훈련은 지식을 바탕에 두고 그것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배운 것을 실습하듯이 기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영적 작용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을 갖추고 난 후에 기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영이 우리를 주장할 때 제대로 반응할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영적 신호체계가 이루어져 능력 있는 기도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또한 그 뜻에 따라서 행동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이고 땅에서 묶으면 하늘에서 묶이는 그런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을 알고 행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과는 그 차이가 엄청납니다. 무작정 오래 기도하면 기도를 제대로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기도의 훈련 과정에서 오래 기도하는 것을 필수과정입니다. 그것은 인내를 배우기 위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공부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기능들을 동시에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하며, 기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에 대해서 막히지 않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저의 글에서 배우는 영적 지식들은 기도를 효과적으로 능률적으로 행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내용들입니다.
기도에 익숙해지고 기도의 다양한 기능들이 몸에 익숙해지기까지 긴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는 영의 호흡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기도를 쉴 수는 없습니다. 바울이 “온갖 기도와 간구로 언제나 성령 안에서 기도하십시오”(엡 6:18)라고 지적한 말씀에서 그는 온갖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 형용사가 함의하는 바는 내용과 수단 모두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내용의 기도와 다양한 형태의 기도 모두를 언제나 성령 안에서 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내용과 방식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내용이란 여러분이 말로 표현하는 기도내용을 포함해서 성령이 일깨워주시는 기도해야 할 내용까지를 의미합니다. 특히 중보기도의 책임을 진 사람의 경우 중보의 영에 의해서 자신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을 기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방식 또한 방언으로 예언으로 하게 됩니다. 환상과 그에 따른 성령의 감동과 다양한 천사들의 도움(눅 22:43)이 있습니다. “그는 천사를 바라보자 겁에 질려서 "주님, 무슨 일이십니까?" 하고 물었다. 천사는 "하나님께서 너의 기도와 자선을 받아들이시고 너를 기억하고 계신다”(행 10:4)라는 말씀처럼 우리들은 때로는 천사의 응답을 듣게도 됩니다.
이런 기도는 우리들의 영적 삶에 무한한 힘을 얻게 해줍니다. 고넬료는 이런 천사의 응답을 통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목숨은 내걸 만큼 담대함을 얻게 되기 위해서는 능력 있는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기도는 기도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꾸준하게 인내하면서 기도할 때 더욱 효과적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질과 양 이 두 가지가 다 중요하며, 질 높은 기도를 위해서는 강도 높은 오랜 기도가 받쳐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