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의 의미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시지 않으며 아무에게도 시험 받지 않으신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우리는 많은 시험을 당합니다. 이 시험은 우리의 어리석음 때문이며, 우리의 욕심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리석음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어리다는 말입니다. 즉 유치하기 때문에 시험을 당한다는 것이지요. 또한 욕심이란 우리의 처한 위치가 어디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신분을 알지 못할 때 욕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시험이란 달가운 것이 아니지만 시험을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이 어디에 있고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시험은 우리 가운데 항상 있는 것이고 그 시험을 통해서 정말로 자신을 하나님이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지요. 시험은 그 비중이 크든지 작든지 상관없이 이와 같은 기능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위치파악을 위해서 주어집니다.
우리는 주제를 파악해야 분수에 맞는 삶을 살 수 있고 사람들에게 놀림감이 되지 않지요.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을 때 거기에 알맞은 행동을 할 수 있고 그런 행동이라야 어색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는 우리의 스스로 알기란 어렵습니다. 특히 영적 위치는 더욱 그러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 무엇이고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행동하더라도 올바르지 못한 경우가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의 위치를 바르게 깨닫게 하기 위해서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곤고한 날에는 깊이 생각하십시오”(전 7:4)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때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던 사람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심각한 장애를 입고 태어났습니다. 이 부부는 이 때부터 많은 갈등에 휩싸이게 되고 자신의 삶을 비로소 진지하게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불행이란 자신들과는 먼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자신에게 닥쳐오자 불행을 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고 그 아픔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 자기만 알고 살아온 이기적인 삶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떤 사람은 40대에 직장에서 물러나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직장을 잃게 되자 삶이 고달프고 미래가 불안합니다. 하루 하루를 품팔이로 살아가는 이웃들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가 된 이 시점에서 비로소 진정으로 그들의 아픔이 몸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해지는 일이 그들의 무능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됨으로써 겸손해지고 세상을 보는 눈에 가식이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서 우리가 처한 진정한 위치가 어디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될 때 겸손이 따라옵니다. 이렇게 되어야 정말로 거듭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어떤 의지나 감정으로가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를 가지고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 것이 거듭난 실존과 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달갑지 않은 시험을 통해서 현실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되고 자신의 모습을 겸손하게 인정하게 됩니다. 극심한 병을 치르고 난 사람은 육체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심각한 경제적 파탄을 경험한 후에야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시험으로부터 시작하여 스스로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이 작은 시험에서 지혜를 얻어 자신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는 능력을 길러내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더 큰 시험을 준비하십니다. 한 번에서 깨닫지 못하면 거듭 간격을 두고 동일한 시험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시험을 단순히 불행한 일이나 피해가야 할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그 시험은 끝이 없습니다.
둘째, 소망을 만듭니다.
우리는 자연인으로 있을 때 마음의 원망(願望)을 가지고 성장합니다. 이것은 성장하면서 이기심과 정의감 등과 섞이면서 욕망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저급한 수준으로 타락하면 욕심이 됩니다. 이 모든 것은 하고자 하는 의지와 기대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그 속성이 죄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욕심이 됩니다. 이 욕심을 하나님으로부터 정결해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서 이 욕심을 거룩한 갈망으로 바꾸어주십니다.
우리는 바라보는 방향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욕심이 되고 소망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자신에게 향하면 욕심이요, 하나님의 나라에 향하면 소망입니다. 우리의 방향이 하나님의 나라에 정확하게 향해 있는지를 알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시험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 보이지 않는 주관적이고 신비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올바르게 지향한다는 것은 육신으로는 전혀 불가능합니다. 이론으로나 지식으로 가능한 영역이 아닙니다. 그리고 객관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표준이 있는 것이 더욱 아닙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의 다림줄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다림줄이 시험입니다. 시험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내면이 어떠한지를 정확하게 깨닫게 됩니다. 겉으로는 거룩하고 선한 의도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마음이 이미 죄로 물들어 있는 사람은 그 판단 자체를 올바르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주변에서의 충고나 권면이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시험대 앞에 서야만 자신을 내려놓고 죄로 가리어진 자신을 시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바를 우리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시험이라는 극단의 방법으로 하시는 것이지요.
우리의 의지와 욕망의 거룩한 소망으로 바뀌어져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시험은 하나님이원하시는 열매를 거두기 위한 조치입니다. 우리는 크고 작은 시험을 항상 만납니다. 그런데 그 시험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한지에 따라서 우리는 각각 다른 효과를 거두게 됩니다.
셋째, 영적 성장을 한 단계 올려줍니다.
영적 성장은 육체적 성장과는 다릅니다. 반드시 시험을 통과해야 성장하는 것이 절대 법칙입니다. 시험은 우리의 영적 수준을 분명하게 깨닫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시험을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존재인지 아닌지를 알게 되고 영적 크기가 어떠한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 분수를 알게 되어야 그에 따라서 영적 권능이 어떠한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매우 심오하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서 자세하게 설명할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을 만날 때 취해야 하는 태도에 대해서 알아보시다.
첫째.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시험을 당할 때 일반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의존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더욱 커다란 시험을 당하게 됩니다. 시험을 당할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에 익숙해있지 않은 사람들은 이 점을 소홀히 하고 문제를 벗어나려고 애씁니다. 당황하거나 서두르지 말고 먼저 주님 앞에 문제를 내어놓고 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에게 아주 자세하게 지금 만난 위험과 어려움을 설명하고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이 원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기를 간구하십시오. 시험은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목적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므로 그 점을 자신에게 적용하여 분별하십시오.
깊은 묵상을 통해서 자신을 객관적인 자리에 내려놓고 자신을 바라보십시오. 이것은 평소에 훈련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은 일이 닥치면 중심을 잃게 되어 적용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자신의 어떤 부분을 다루시려고 하시는지를 생각하십시오. 성령님이 자신의 마음속에 생각을 떠올려 주실 것입니다. 그 생각을 가지고 회개하고 돌이키십시오. 그리고 시험을 통해서 그런 마음을 배우고 채워 넣어야 합니다. 자신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시각을 받아들여 자신의 의지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둘째, 선한 조언을 구해야 합니다.
먼저 지혜를 구하고 그 지혜를 통해서 얻어진 내용을 가지고 행동하기에 앞서서 선한 조언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과 육의 두 가지 요소를 다 사용하시며 그 두 가지의 일체를 통해서 확증을 얻게 하십니다. 베드로가 욥바에서 기도할 때 환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현실에서 확증하기 위해서 사람을 보내어주셨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증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영적인 일이며 이 영적인 일을 확증하기 위한 증거는 현실적이고 육체적입니다. 이런 증거를 얻는 방법이 선한 조언자를 통해서 일치된 결과를 얻는 것입니다. 이것은 필수적입니다. 물론 이 부분을 생략하고 영적 증거만을 가지고 믿음으로 행동에 옮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증거를 얻는 것이 더욱 소중하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선한 조언자란 목회자나 영적 멘토를 말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늘 주님을 가까이하는 경건한 사람이면 됩니다.
선한 조언은 우리가 영적으로 아직 미숙할 경우 그 비중이 더 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성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을 평상시에 쌓아두어야 합니다. 특히 묵상기도와 관상기도는 필수입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깨달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진행을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이 시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를 깨닫고 받아들였다면 그 시험은 서서히 거두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시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신호를 보내었고 여러 가지로 인도하셨지만 우리의 무지와 욕심으로 인해서 그런 인도하심을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시작되었을 즈음에는 그 의미를 제대로 알았다 해도 당장에 안개 걷히듯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마다 거두어지는데 필요한 시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진행은 당사자가 인식할 수 있도록 그렇게 진행되어 가면서 서서히 때로는 급속히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시험의 진행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되는 것이 있지만 어떤 문제는 전혀 해결 되지 않고 평생 그 문제를 가지고 가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의 속성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마치 바울이 병을 평생 몸에 지니고 다녀야만 했던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의 분명한 의미와 목적을 알게 되며, 그것이 오히려 행복의 조건이 된다는 점도 깨닫게 됩니다. 평생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은 그 짐으로 인해서 얻게 될 다른 축복이 반드시 있습니다. 이 축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짐을 오히려 감사하게 되고 절대로 부끄럽게 여기지 않게 됩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은 반드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를 제대로 깨달을 때 우리는 영적으로 한 단계 성장하게 됩니다.
출처: 성령치유집회 (부산)세계로 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야긴과 보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