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을 대적하라
신약성경에서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는 귀신의 존재는 단순히 쫓겨나는, 당하는 보잘 것 없는 존재만을 말하지 않는다. 귀신은 단순히 영적 존재를 말하는 것이 나니라 그 역사는 에덴동산 이전의 하나님의 피조물인 천사들의 존재로부터 시작한다.
직접적인 표현들보다는 간접적인 표현들로 성경에서는 사단이 귀신들의 우두머리로 말씀하고 있으며 그 사단의 존재는 하나님의 피조물 중 천사였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
사단은 천사로 지음을 받았으나 자신의 존재가 너무 아름다워 하나님과 견줄 욕심을 가지고 대적하다가 하늘로부터 쫓겨나 지상에서 자신의 나라를 만들게 되었다.
사단은 에덴동산에서 뱀을 통해 하나님을 대적했으며 인간에게 주어진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빼앗아간 장본인이었다.
우리는 지금 사단과의 전쟁 중에 있다.(점령군과 패잔병의 전투)
예수님이 사단의 도전을 받을 때 사탄이 가지고 있던 세상의 권력과 영예들은 처음부터 사단의 소유가 아니었다.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세상으로 쫓겨날 때 사단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사단은 무일푼의 하찮은 존재였지만 그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세상권세를 빼앗아간 이후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하나님의사람들을 유혹하고 그리스도인들의 나태하고 게으른 틈을 노려 도적질한 결과 세상을 장악할 만 한 권력이 충분해 질 수 있었다.
우리는 단지 사탄의 세력과 권세가 처음부터 주어진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지만 사단의 그것들은 바로 기독교인들에게서 빼앗아온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인해 우리가 해야 할 의무와 책임까지 잊어버리고 게으름과 나태함에 빠져 사단에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당하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패배 가운데 살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나면 사단과의 전쟁가운데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자신의 인생이 패배자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면 나는 승리자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을 뿐 십자가의 승리를 가진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행동하고,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이 없이 누리기만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사단은 속이기 위한 간교한 술수를 가지고 실재로 그리스도인을 공격하고 대적한다.
사단은 속이는 자이기 때문에 그가 사용하는 일차적인 전술중의 하나는 영적 전투에 무지한 채로 그리스도인들이 계속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단이나 귀신들의 활동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전투로 무력화시키거나 견고한 진을 파쇄할 수 있는 권세가 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사단의 공격에 노출되어 세상권세를 계속해서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이 위임하신 그것을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던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권세와 능력들을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회복할 때 정치, 경제, 사회에 만연한 부정직과 힘의 논리들이 힘을 잃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자유 함에 대한 삐뚤어진 논리로 인해 사단의 가장 기본적인 유혹수단들에 대하여 관대해져가고 있다. 조그만 속임수에 관대하고 어느 정도의 타협적 자세는 괜찮을 것이라는 자위를 하고 대의를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해도 적법한 것으로 자연스럽게받아들이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들에 대하여 스스로 회복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이제부터는 생활의 작은 구석구석까지 민감해지는 기초를 다져가야 한다.
이미 다스림의 권세는 우리에게 주어졌고 사도들에 의해 귀신을 내쫓는 권세가 행해 졌던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사단은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 곁을 맴돌며 실재로 그리스도인을 공격하여 넘어지도록 만들기도 한다. 사단을 부정하거나 귀신들의 활동은 이제 그리스도인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생각이며 성경에 대한 무지에서 시작된 커다란 실수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완전한 승리를 성취하셨고 또한 그리스도인은 그 승리로 인하여 사단과의 상대적 지위에서 우위를 차지할 만큼 그 승리를 통해 권세를 다시 회복했지만 그 승리는 보장된 것일 뿐 우리에게는 세상에서의 영적인 전투를 통해 사단으로부터 잃었던 모든 것을 스스로 회복해야하는 다스림의 권세가 주어졌다. 그러므로 영적인 전투는 세상 나라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때까지 지상에서 그리스도인이 다스림의 권세로 통치하여 세상을 점령해 나가야 할 책임이 주어진 것이다.
영적 전투는 벌어지고 싸움은 항상 일어나지만 승리는 이미 그리스도인의 것이다.
우리는 그 권세를 가지고 나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포하고 사단과 그 졸개들이 우리의 영토에서 떠날 것을 명령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다스림의 권세를 가지고 있지만 통치하지 못하고 있다.
통치의 방법을 모른다.
어떻게 명령하고 다스리는지 통치의 경험을 잃어 버렸다.
사단은 이제 점령군이 아니다.
세상 모든 전투에서 패잔병이 되었으며 어떤 권리 주장도 하지 못할 무장해제를 당했다.
하지만 아직도 세상 밖으로 쫓겨나지를 안았다.
새로운 하나님의 승리한 군대가 단숨에 세상을 접수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들의 승리가 아직 믿기지 않는다.
너무 오랫동안 사단의 군대에 점령당해 오다 보니 지배를 당하는 것에 아직도 익숙해 있다.
하늘의 군사들이 세상을 점령해서 모든 환경을 바로잡았는데도 실재로 자기 세상을 다스려야하는 원주민들은 지지부진하게 자신들의 영토를 유효적절하게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
아담과 하와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졌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서 세상을 다스렸던 경험이 너무 짧았다.
아담과 하와로부터 이어받은 유전 인자 속에 다스렸던 경험 보다는 다스림을 받으며 살았던 유전인자가 더 많았다. 자기 세상을 회복한 그리스도인에게 세상을 다시 통치한다는 것이 그리 녹녹한 것은 아니었다.
죄에 대한 흔적들, 아직도 자기 자신 속에서 해결하지 못한 죄에 대한 기억과 경험들 그리고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쌓여진 죄는, 무장해제를 당해 이제는 세상의 지배력을 잃어버린 사단에게 틈을 허용하는 통로가 되었다. 사단은 통치하지 못하지만 이제는 유혹하고 속이고 미혹하는 거짓의 영이 되어 그리스도인을 넘어지게 만들어 다시 자신의 권세를 회복하려고 도적이 되어 돌아온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접근하여 교묘하게 유혹하고 속여서 넘어지게 만들었던 때와 같이, 그 때로 다시 돌아갔다. 이제는 그리스도인에게 회복된, 세상 다스리는 통치권을 올바로 행사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세상에 아직도 남아있는, 내 주변에서 유혹하려고 노리고 있는 사단의 영향력과 미혹됨을 향해 명령해야 한다. 예수님의 피흘리심으로 우리의 세상권세를 다시 에덴동산의 상태로 회복시켜 주셨지만 사단은 아직 심판받지 않았다. 에덴동산의 상태로 회복은, 세상 다스리는 권세를 처음 주인이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려 준 것뿐이다. 사단도 아직 있고, 유혹도, 미혹함도, 거짓의 영도 함께 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만 있는 천국이 아니다.
에덴동산은 인간에 의해 다스려져야 하는 곳이다.
선도 그대로 있고 악도 그대로 있다.
이제부터는 악을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
악이 무엇인지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무엇을 선택해야하는지 너무 잘 알게 되었다.
지금부터 세상을 다스려야한다.
통치자가 되어 세상에 있는 사단을 제한하고 파쇄하고 명령해서 묶어야 한다.
예수님의 피흘리심으로 이제부터는 죄에 대하여 핑계할 수 없다.
“사단이 우리를 유혹해서 우리가 넘어졌습니다.”라고 전가할 수 없는 세상의 주인, 통치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0년이 지나도록 사람들은 아직도 십자가에 머물러 단지 구원받은 기쁨에만 취해 있다.
에덴동산으로 돌아와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직도 십자가에 머물러 있다면 이제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승리의 선포는 2000년 전에 끝났다.
전쟁의 종식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세상에서 사단을 몰아내라!
자신의 내부에서 사단을 몰아내라!
전쟁은 끝났지만 승리의 권세는 이미 그리스도인의 것이 되었지만 예전의 점령군은 아직도 거리 곳곳에 숨어있다.
일일이 거리를 뒤지고, 집을 수색해서 숨어있는 사단의 졸개들을 어두운 곳으로 내몰아야 한다.
패잔병은 저항하거나 대적할 수 없다.
그러나 숨어서 위협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어떤 것은 승리자의 옷을 입고 승전 군 흉내를 내며 남아 있으려고 한다.
점령지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은 승전 군에게 달려있다.
귀신들림은 단지 인간의 신체적 질병만을 일으키거나 주장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역을 장악한 사단의 권리 주장도 있으며, 개인과 가정을 오랜 동안 자신의 영토로 만들어 권리주장을 하기도 하며, 지역과 국가, 민족적 아픔과 분노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도 한다.
본 주제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귀신을 내쫓는 중보사역은 단순히 개인의 질병을 고치는 수준을 넘어 가정, 이웃, 지역, 국가와 민족을 상대로 하는 영적 전투로 나가야 한다.
영의 전투는 대등한 위치와 화력을 가진 주력군과의 싸움이 아니다.
영의 전투는 패잔병을 몰아내는 통치자로서의 명령과 다스림의 선포로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숨어서 기회를 노리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패잔병을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귀신들의 세력과 그 영향력이 마치 그리스도인과 대등한 관계에서 대치하는 모습으로 잘못이해하고 있다.
사단과 그의 졸개들은 그리스도인과 대등한 위치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미 십자가에서 그 모든 세상권세를 잃어 버렸고 무장해제를 당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숨어서 은밀하게 활동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며, 대다수의 그들의 활동 방법은 들키지 않고 그 책임이 그리스도인에게 전가 되도록 들어내지 않고 활동한다.
하나님도 어쩔 수 없이 사단에게 허용한 것이 하나있다.
그것은 죄에 대한 사단의 송사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당연히 사단의 영향력을 받게 되고 사단에게 돌아가게 된다.(딤전5:15)
그리스도인이 회개해야할 근거가 여기에 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그리스도인은 다시 사단에 의해 점령당하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도 없고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도 상실된다.
다시 아담과 하와처럼 저주아래 놓이게 된다.
사단의 최대의 목표가 다시 정해졌다.
수많은 아담과 하와를 다시 이 세상에 내보내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승리는 이 세상 자체에 임한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은 노아의 홍수 이 후에 변한 것이 없다.
세상을 바꾸고 변화하도록 만든 것은 타락한 인간이었다.
자연은 변한 것이 없지만 인간의 타락의 강도와 깊이가 변함에 따라 세상도 함께 타락의 영향을 받은 것뿐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타락하고 변한 것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다. 타락한 인간의 책임이다.
그 복구와 회복의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타락한 인간의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다루시고 회복하셨을 뿐이다.
세상을 다스리고 다시 에덴동산의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승리는 그리스도인 각 사람에게 임하신 승리이며 약속일뿐 세상까지 포함하지 않는다. 결국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는 인간에게 이미 위임하셨기 때문이다.
그 승리는 완전한 승리이기 때문에 사단이 다시 거론하거나 침범해서 이의를 달수 없다.
완전한 승리가 그리스도인에게서 적용되려면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죄라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죄에 대한 완전한 승리가 선포되었지만 그 승리는 회개할 때 임한다.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선포된 승리가 죄를 덮어주지는 못한다.
십자가의 승리는 죄에 대하여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포함하고 예외도 없이 완벽하다.
하지만 회개 없이 용서도 없다.
죄인이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어 회개하고 죄 용서를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 된 자격을 인정(칭의, 의화)받는다.
그 다음 은 성화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도인은 자신에게 있는 죄를 철저하게 들어내고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
성화의 단계에서 우리가 다루어야 하는 죄는 보다 깊은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가야 한다.
조상으로부터 자신과 가정에 들어와 있는 죄, 상처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단의 견고한 진, 일상적으로 죄를 묻어 두었던 것들을 다루어야 한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에도 조상의 죄(욥21:19)가 있어도 자손에게 갚으시기까지 했지만 구원의 여정에서는 계속 기다려 주셨다.
그러나 회개가 없을 때는 그 죄 값을 물으셨다.(계2:5)
죄는 그리스도인의 성화의 삶에서 가장 신속하게 반응하는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영향력이다.
죄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성화되어가는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영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죄로부터 자유로워 질 때 그리스도인은 다스림의 권세를 회복하고 통치할 수 있다.
사단의 졸개들인 귀신들이 하는 짓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숨어서 활동하기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언젠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전철을 타기 위해 작은 버스에 올랐을 때의 일이다.
멀쩡해 보이는 청년이 내 옆 좌석에 앉아 있고 나는 그의 옆에 서서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앉아있던 청년이 차창 가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뭐라 열심히 말을 하고 있었다.
그가 아는 청년들인가 싶어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차창 밖으로 그의 목소리가 들릴 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말을 하고 있었다.
"이따가 집에서 봐! 세미야! 알았지."라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다.
이상해서 바라보니 그는 혼자서 떠들고 있었다.
가끔 깊은 헛기침을 하며 같은 말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며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주변사람들도 이상하다는 듯 그를 처다 보고 있었다.
영적인 민감함은 금방 사람들에게 느껴지는가 보다.
그는 계속해서 "세미"라는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세미! 세미!"
나는 옆에 서서 가만히 그의 어깨에 손을 갔다 대고는 이렇게 물었다.(속으로 말을 했다.)
"너는 왜? 세미라는 이름에 그렇게 집착을 하느냐? 세미가 누구냐?"라고 분명히 마음속으로 물었다.
그랬더니 그 청년은 나를 처다 보지도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세미는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야!"라고 분명하게 내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우연이라고는 너무 황당한 상황을 직면하고서는 갑자기 오싹함을 느꼈다.
영적인 환경에 늘 밀접한 관계를 하고 살고 있었지만 시험 삼아 물어본 것에 이처럼 즉각 답을 해오는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귀신을 내쫓기 위해 사역하는 모습들을 보며 가끔 귀신이 사람의 입을 통해 대화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실제로 내 앞에서 내 질문에 분명하게 대답을 하는 경우를 나는 처음 겪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마음속으로 한말에 대해서....... 그 사람은 나에게 한번도 눈길을 주지 않고 있었지만 나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살며시 대고는 귀신이 묶임을 당하고 떠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했다. 아주 작은 소리로 마음속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정도라면 작은 소리로 선포하는 것도 그는 듣고 있을 터였다. 사람들이 가득 실려 있는 자동차안에서 큰소리로 하는 것도 그렇고 작은 소리로 하자니 답답하기도 했지만 잠시 잠잠하다가 다시 중얼대기 를 몇 번 반복하다가 금세 자동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만 그를 보내주어야만 했지만 교회에서 이런 사람들을 데려다가 좀 그의 사로잡힘을 풀어줄 수 있는 사역들을 감당했으면 참 좋겠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참 답답함을 느낀다.
“그도 얼마나 괴로울까!”를 생각하면 길거리라도,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사로잡힘을 묶고 선포하고 싶지만 아직은 그것이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그가 급히 걸어가는 등 뒤를 향해 나는 계속해서 선포하며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은 이처럼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마음속으로 한 말에 대하여서도 사단은 알아듣고 그에 대하여 응대를 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입을 통해 나오는 그 말에는 우리가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엄청난 능력과 권세가 숨어있다. 우리가 물을 마실 때에도 그 컵에 담긴 물을 향해 감사하다고 좋다고 선포하면 그 컵에 담긴 물의 분자구조가 바뀐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
(물은 답을 알고 있다. / 나무 심는 사람들 / 출판 / “국제파동회”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아직 잘 모르지만 본 서적은 종교적 주장이 아닌 과학적 주장이라는 점을 참고)
큰 돈을 들여 연수기와 정수기 그리고 좋다는 육각 수들을 사먹거나 기계를 들여 놀 필요가 없다.
그저 컵에 담긴 물을 향해 감사를 표시하거나 선포하라!
그러면 당신은 우리의 몸에 가장 잘 흡수되는 물 분자구조로 바뀐 좋은 물을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은 과학이 증명하고 있는 사실들이다.
귀신을 내 쫓는 것 역시 우리의 입을 통해 선포되는 예수님 이름은, 능력과 권세로 다스림의 권위를 가지고 나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입을 통해 선포되는 모든 말은 하나님도, 성령님도, 예수님도, 내 영도, 사단도 듣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세미는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야!"
주님은 우리가 영의 전투(사단을 향해 명령을 선포하는 것)가 벌어지는 세상에서 확실한 점령군(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라고 계신다.
Ⅰ. 사단의 존재에 대하여 우리는 너무 모르고 있다.
사람들은 사단의 존재에 대하여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일생을 살며 겪는 여러 가지 사건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되지만 굿이 그것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영적 세력이 존재하며 어떤 때는 자신에게 해가 된다는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또 영화 혹은 문화 예술의 세계에서 다루는 악마의 존재는 상당히 위협적이며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생각할 대상이 아니었다.
특별히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 우리에게 비춰진 사단 혹은 악마라는 존재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차원이 다른 존재로 부각되었고 항상 선한 자를 공격하거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실력자로 그려져 왔다. 사단은 문화 예술이라는 창조적 표현의 자유 뒤에 숨어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 두려움의 대상으로 포장했다.
사단은 이미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다 잃어버리고 말았지만 지난 2000년 동안 세상을 다시 정복하려고 나름대로 전략을 구사해 오고 있다.
이제는 자신의 본색을 숨기고 은밀하게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고 있다.
이제는 세상을 지배하는 통치자로서가 아니라 다시 권세를 회복하려는 도전 자의 입장으로 자신의 노예가 되어버린 사람들을 앞에 내세우고 뒤에 숨어 조종하고 있다.
사단은 아직도 견고한 자신의 진지를 이 세상에 구축해 놓고 있다.
수많은 우상들, 샤머니즘, 이방종교, 만연한 죄, 합리적인 사상, 질병, 상처, 욕심, 시기 질투, 유혹, 성적타락과 같은 거점들을 마련하고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영역을 다시 넓혀 가고 있다.
70년대에는 그랬습니다.
전설의 고향 시대에는 악은 늘 선에게 당했습니다.
권선징악이 공포영화의 끝이었습니다.
그 때는 아무리 무서워도 선이 이기는 모습 때문에 벌벌 떨며 공포영화를 보았습니다.
80년대에는 선과 악이 대등한 관계를 가지며 대치하는 영화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것은 시대적 흐름과 영화의 결말도 함께 한다는 것이 참 흥미롭습니다.
어떤 경우는 대등한 관계에서 싸우다가 죽기도 하지만 꼭 다시 되살아나고 또 죽었다가 다시 되 살아났습니다.
전설의 고향에서 다시 살아나는 사단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가 지난 다음의 사단은 항상 죽는 듯하다가 다시 되살아나 복수하고 선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는 영화들이 참 많이 나왔습니다.
그 대표적 시리즈가 "프레디(쿠르거)"라는 이름을 가진 공포영화였습니다.
90년대는 악이 이기는 시대입니다.
선과 악이 처절한 싸움을 벌이다가 마지막에는 악이 이겼습니다.
무적의 악의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대표적 영화가 "엑소시스트"입니다.
선이 아무리 발버둥 처도 악을 이기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시대적으로도 부정부패와 돈과 명예를 가진 자들이 세상을 틀어쥐고 뒤 흔드는 시대적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000년 공포영화의 흐름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아십니까?
악이 선을 하도 이기고 있으니까?
혹시 사람들이 악을 무서워해서 다시 하나님에게로 되돌아가지 않을까! 를 염려했는지 악이 선을 직접 공격하거나 헤치는 것보다, 다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악은 여전히 공포를 만들어 내지만 직접 선을 헤치거나 죽이지 않습니다.
선이 선을 죽이도록 합니다.
그 사이에서 사단은 선을 속입니다.
속임수를 공격 방법으로 바꾸어 최대의 공포와 악의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다크니스"라는 영화에서 악은 새로운 공격방법을 선보입니다.
선한 사람들이 악의 교묘한 속임수에 속아 서로를 죽입니다.
그것도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말입니다.
피가 낭자하거나 온 몸이 오싹할 정도의 공포는 없지만 절묘하게 선이 선을 죽이게 하는 장면에서 악은 극도의 절제를 보여 줍니다.
그렇습니다.
요즘 사단은 우리를 속이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속이는 전략은 역사이래로 한번도 사단이 사용하는 전투전략에서 실패한 적이 없었습니다.
여전히 속이는 전략은 최고의 전투수단입니다.
교묘하고 은밀한 전략으로 이 세상을 다시 찾으려는 사단의 전략은 적중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영매들, 퇴마사들, 점성술과 샤머니즘과 연결 된 종교적 레저 스포츠 문화들, 토속문화 보존이라는 이유 하에 번지고 있 는 샤머니즘의 문화예술 바람들, 정치적 경제적 목적 때문에 일어나는 분쟁과 전쟁들, 심지어 사단의 문화를 일으키기 위해 샤머니즘 종교 철 학자들을 양성하 기 위한 학교 까지 세워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광범위한 분야와 환경을 통해 아직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사단을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
1. 사단을 표현하고 있는 성경의 이름들
계명성(Lucifer), (사14:12~17) - “빛을 가지고 다니는 자”
태양계의 혹성 중 금성을 가리키는 말이며, 광명의 천사로 자기를 위장하고 있다.(고후11:14)
또한 에스겔서에 나온 “기름부음을 받는 덮는 그룹”을 말하기도 한다.(겔28:14-19)
사단(Satan), (마4:10) - 사단이라고 지칭하는 표현은 33회 신약성경에서 나온다.
그 의미는 “고소 자” 즉 타락 시키는 자로 묘사되고 있다.
마귀(the devil), (요13:2) - “중상 모략하는 자” 신약에서33회 나온다.
마귀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중간에서 중상 모략하여 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든다.
용(the dragon), (계20:2) - “매혹 된다고 생각하는 뱀의 전설상의 종류”를 말한다.
용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를 말한다.(계12:9)
뱀 (the serpent), (고후11:3) - ‘속이는 자’, ‘간교한 수단을 부리는 자,’
시험하는 자(the tempter), (마4:3) - ‘자세히 조사하다,’ ‘유혹하다.’
공중 권세 잡은 자(엡2:2) - 다니엘의 기도 시간에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들고 오는 천사를 바사국군(페르시아)을 지배하는 악령이 21일 동안 막았으나 천사 장중에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도와줌으로 올 수 있었다고 함(단10:13)
도적(The thief), (요10:10, 눅12:39) - ‘노획하는 자’ 도적의 특징은 은밀하게 들어와 몰래 훔치는 자를 말한다.
미혹하는 자(deceivers), (요이1:7) - ‘사기꾼, 거짓 인도자, 기만 자, 유혹 하는 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
적그리스도(antichrist), (요일4:3) - ‘메시야의 적’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어두움의 세상주관 자 (the rulers of the darkness of this world), (엡6:12) - 그리스도인이 대항하는 영의 싸움의 대상 자
귀신의 영(spirits of devils), (계16:14) - ‘신적 존재로서의 악마,’ 기적을 행하는 귀신들의 영
악신(evil spirit), (삼상16:14) - ‘짜증나게 하다,’ ‘슬프게 하다,’ ‘상처.’ ‘해로운,’ 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악신에게 명하여 죄와 불순종한 사람들을 다루시는 방법으로 사용하셨다.
귀신(unclean spirit), (막5:2) - ‘악마의 깨끗지 못한 영’을 의미하고 있다.
특히 귀신의 존재는 사단과는 구별되며 사단을 돕는 졸개들을 말한다.
우리가 함께 생각하려는 주제의 주된 대상이다.
2. 사단과 그의 군대
사단은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욕심을 가지고 반역을 시도했지만 하나님의 징계로 하늘 지위에서 쫓겨난 전직 천사장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사단이 하늘 지위에서 쫓겨날 때 그를 따라 함께 지상으로 내려온 천사들이 있었다.
사단은 파괴하거나 죽일 수 있지만 창조의 능력은 없다.
그런 면에서 사단이 자신의 졸개들의 수를 불리기 위해 귀신을 창조해 내거나 수를 임의의 방법으로 늘릴 수는 없다. 그러나 사단이 하늘의 지위를 가지고 있을 때 자신을 따르던 천사의 무리가 상당했던 것 같다.(계12:7-9)
성경에서 유추할 수 있는 사단의 지위는 천사 장 가브리엘과 미가엘보다 더 한 단계 위의 천사 장 이었던 것 같다.(유1:9)
계명성(루시퍼)을 설명하는 내용을 볼 때 루시퍼는 상당한 규모의 천사들을 거느린 리더였을 것이다.
또한 그를 따르던 천사들이 사단을 따라 지상으로 내려 온 것을 볼 때 사단의 졸개들의 수는 상당한 규모를 가지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3. 사단의 군대와 하나님의 군대
사단과 함께 한 천사들이 어느 정도의 수를 가지고 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예수님을 잡아가려는 로마 군인들을 막아선 베드로의 검을 도로 집어넣을 것을 말씀하시며 예수님은 지금이라도 당장 하늘 천사들의 군대를 불러 올 수도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늘 군대의 조직과 규모를 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다.
마26:53절에 예수님은 “열 두 영 더 되는 천사”라고 말씀하고 있다.
“열 두 영”은 로마 군인의 조직으로 보면 12개 여단(군단-Legions), 1개 군단의 인원이 6천명일 때 12개 군단이 넘는 천사들, 즉 72,000이 넘는 큰 군대를 말한다.
하지만 이 표현은 로마 군대의 조직을 따른 것일 뿐 하늘나라 천사들의 군편성은 알 길이 없다.
또 막5:9절을 보면 귀신들린 자와 예수님의 대화가 나오는데 귀신에게 예수님이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묻자 귀신은 “내 이름은 군대(Legion) 니”라고 대답한다.
이 말 역시 귀신의 규모와 조직이 군단(여단 규모의 군 조직)규모 이상의 많은 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 로마군단은 병사 6000명으로 된 큰 전투 부대로서 600명으로 구성된 10개 보병 대대로 나뉘어 있었다. 각 대대에는 3개 중대가 소속되어 1개 중대에는 200명의 병사가 하나의 전투 단위를 형성하고, 다시 2개의 백인 대(켄투리아)로 나뉘어 있었다.
성경에 자주 나오는 '백부장'은 이 백인 대를 지휘하던 말단 지휘관이다.
참고로 각 대대의 숫자는 변동이 있을 때도 있었다.
전쟁이 치열할 때라면 1개 군단이 6000명이 아니라 늘려서 8000명까지도 될 수도 있다.
한 사람에게 귀신이 6000개 이상 들어가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예수님이 그 사람을 떠나라고 명령하자 귀신들은 돼지 떼 이천 마리(막5:11-13)에게 들어가 바다에서 몰살하게 했다. 흔히 사람의 몸에 들어가 “귀신들림”의 상태로 주장하는 “더러운 영의”존재는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피조물 중 천사들은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인간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로 만드셨다.
천사는 생육할 수 없으며 한번 창조된 천사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나님의 심부름을 한다.
다만 타락한 천사장과 그를 따르는 더러운 영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무저갱(눅8:31)으로 영원히 보내져 갇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사단과 더러운 영들의 마지막 모습이다.
흔히 영화를 통해 나타나는 귀신(사람들이 죽어서 떠도는 영혼으로서의 귀신)들의 존재는 허구이며 사람의 영혼은 육체를 떠나 즉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 게 되어 하나님의 나라와 지옥으로 구분되어 보내지게 되다. 이 세상과 하늘나라의 중간 단계나 혹은 심판이 미루어진 상태로 떠도는 영혼이란 있을 수도 없으며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실수란 불가능하다.
사단은 자신의 의도를 가지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화와 예술의 장르를 이용해 공포심과 두려움을 만들어 내기 위한 수단으로 악마와 귀신들을 만들어 냈다.
유령의 존재들 역시 두려움과 공포심을 만들어 감히 사단과 그 졸개들에 대하여 대항하지 못하도록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꾸며진 사단의 졸개들에 의한 조작된 현상들이다.
사단과 그를 따르는 더러운 영들의 영적 능력이나 파워가 인간을 능가하는 것은 사실이나, 사단의 의도대로 인간의 생명을 헤칠 수는 없다. 사단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기 싫어하지만 이미 사단과 그의 졸개들에게는 한계가 주어졌고, 하나님 자녀들의 권세아래 있다.
중요한 것은 사단과 그 졸개 들이 어떤 것이며 아무리 공포심과 두려움을 만들어 내도 그들은 다스림의 권세를 회복하고 세상을 통치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위협적인 능력으로 맞설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죄를 회개하지 않고 사단의 견고한 진을 계속해서 자신의 삶에 허용하고 산다면 결국 그는 사단의 자녀로 되돌아가고 말 것이다.
Ⅱ. 귀신(더러운 영)은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가?
마태복음4: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 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모든 앓는 자”는 병자와 귀신들린 자 모두를 총칭하고 있다.
귀신들림을 질병의 차원으로 본다는 것이다.
병 고침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영의 질병은 “영의 무능력 상태”를 말한다.
더러운 영, 귀신에 의해 영적 무능력 상태가 돼버린 성도를 사단이 사로잡게 되는 것, 이것을 “귀신들림 상태”(사단에게 성가시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라고 말한다.
사단은 그리스도인의 영에 들어올 수 있는가?
구약과 신약의 상황이 조금 다르고, 영과 혼에 대한 구분의 문제가 있다.
전통적으로 장로교에서는 영혼과 육으로 나누는 이분 설을 주장하고 그 외 는 삼분 설 영, 혼, 육으로 나누어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이분 설과 삼분 설중 어느 것이 더 성경적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어느 쪽이 진리이고 비 진리인지를 확실한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각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좋겠다. 나는 삼분 설을 선택해 더러운 귀신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을 주장하게 되는지에 대하여 설명하려고 한다.
1. 구약의 영의 상태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사람을 만드시고 그가 온 세상을 다스리며 살기를 원하셨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한
이후 에덴의 동산에서 인간을 내좇고 출입을 봉하셨다.
범죄의 결과로 타락한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험하고 힘든 삶으로 변해 버렸다.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인간은 죄의 성품을 다스릴 수 없어 점점 타락의 길을 걷게 된다.
몇 세대가 흘렀을까?
인간의 모습은 죄의 관영함으로 나타났고 무서운 성의 타락이 온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다.(창6:1-2)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의 정도가 극심해 지자 하나님의 신(My spirit)을 사람들에게서 영원히(소멸, 숨겨진) 떠나게 하셨다.(창6:3) 그 후 구약에서 하나님의 신은 상황과 필요 그리고 제한된 사람들에게(선지자, 왕, 제사장, 지도자) 임하게 하셨을 뿐 타락한 인간들에게서 하나님의 신은 거하지 않으셨다.
창세기6:3절 이후 인간은 급속한 타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고, 하나님은 성령이 떠난 육체를 향해 심판의 날을 세우시고 직접 심판하셨다. 간혹 하나님의 신을 주어 도우셨던 인물이라도 그들이 죄악에 물들어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은 성령을 거두시고 그들을 심판하셨다.
노아 때의 홍수 사건 - 창세기6:1-7:24)
소돔과 고모라성의 심판 - 창세기18:20-19:25)
이스라엘의 멸망 - (이사야3:1-15)
엘리 제사장(삼상3:14), 사울 왕(삼상31:3), 그 외 왕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특히 사울왕의 경우처럼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 왕으로 세웠을 때 그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삼상10:913)
함으로 사람들이 의아해 할 만큼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사울 왕이 하나님을 떠나 불순종함(삼상15:10-11)으로 하나님의 신은 떠나고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구약의 하나님은 성령이 떠난 사람들을 향해 직접 임하셔서 그들과 함께 하실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죄악이 너무 타락해 그들 영 가운데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하실 수가 없는 더러워진 죽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죄의 오염은 그들 스스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하나님은 제사장을 두어 죄인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한 방편으로 제사를 드리게 하셨다.
사단은 하나님의 신이 떠난 인간의 영을 지배하려고 하나님을 향해 불순종과 성적 타락을 부추겼으며 세상은 심각한 타락으로 하나님의 분노를 더욱 가중 시켜나갔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서 저지르는 범죄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로, 불순종의 죄악이다.
둘째로, 성적 타락이다.
세 번째로, 우상 숭배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부추겼다.
하나님은 그 때마다 직접 심판을 하셨고 이스라엘과 범죄자들은 즉시 그 심판의 대상이 되어 죽었다.
사단의 전략은 성공했고 죄로 물든 이스라엘의 역사는 심판과 회개와 회복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구약에서 사단은 대단히 성공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
사단은 인간이 가지고 있던 세상 다스리는 권세를 완벽하게 빼앗았고 그것을 누리고 있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신이 거할 수 있는 영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단은 쉽게 인간의 영을 주장하고 그 안에 들어가 자신의 목적대로 조정하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사단의 더러운 영들은 손쉽게 인간들의 삶을 조정했고 오랜 세월동안 자신의 거처로 삼고 지낼 수 있었다.
2. 신약의 영의 상태
창세기6장3절에서 인간의 몸을 떠난 성령님은 제한된 사람들에게서 임하실 수가 있었다.
그 이유는 죄로 물든 인간의 영을 성령님이 거하실 처소로 삼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죄로 물든 인간의 영을 새롭게 하실 하나님의 계획이 이제 실천될 시기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작정하셨다.
2000년 전 예수님은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셨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하신 일이라고는 사단을 상대로 하늘의 천군천사의 군대를 이끌고 멋진 전쟁을 하심으로 사단을 인간의 영에서 좇아내신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죄로 더러운 영의 거처가 되어버린 인간의 영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님의 피를 죄 값으로 제단에 바쳐야만 했다.
구약에서 수없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용서받기 위해 드렸던 제사의 마지막으로 드려지는 완전한 제사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간의 영을 지배하던 죄의 문제들은 모두 해결되었고 다시 하나님의 소유로 되돌려 지게 되었다.
이 때부터 사단은 그리스도인의 영에 침범하거나 자기의 영역으로 주장 할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단절되었던 사람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셨고 그와 동시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신을 다시 보내주셨다.(눅24:49-53, 행1:6-14, 행2:1-13) 드디어 성령님의 임재가 우리의 영으로 들어오셨다.
죄로 오염되었던 인간의 영을 새롭게 하셨고 성령의 임재의 장소로 회복시켜 주셨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를 구주로 믿는 그리스도인의 영은 늘 하나님의 성령께서 임재 하여 계시는 처소가 되었다. 신약에서의 사단은 이제 그리스도인의 영으로 들어오거나 침해할 수 없다.
그러나 사단의 졸개들인 더러운 영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공격하고 유혹하고 넘어지게 만든다.
첫째로, 사단이 사람의 영 가운데 임할 수 없지만 혼의 영역에는 침범할 수 있다.
당연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에게는 여전히 사단의 권세가 그들의 영을 지배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불가능하다.
혼의 영역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있다.
욥기서12:10 “생물들의 혼(soul-호흡하는 생물, 동물)과 인생들의 영(the breath-생명, 하늘의 영역)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
데살로니가전서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spirit)과 혼(soul)과 몸(body)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히브리서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soul)과 영(spirit)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사단의 더러운 영이 혼의 영역을 장악하면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혼의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되는 것일 뿐 그리스도인의 영이 완전히 상실되거나 성령께서 떠나시지는 않는다.
단 예외는 있다.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죄를 회개하지 않고 육체의 소욕을 따라 계속해서 살게 된다면 그는 구원받지 못한다.(갈6:8) 즉 성령이 상실 된다는 것이다.(예정론, 선택적 예정론, 인간의 의지에 의한 구원론 등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마12:31~3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 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혼의 영역이 사단의 더러운 귀신들에 의해 지배를 당하면 우리의 몸에서 영향력이 커지도록 만드는 것은 육체의 소욕을 주장하게 된다. 혼의 영역을 주장하게 되는 단계는 성화의 삶을 살려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사단의 의도된 견고한 진을 말한다.
견고한 진은 세대를 통해 흐르는 죄의 영향력과 상처를 통해 묻어둔 분노의 감정들이다.
사단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혼의 영역에 있는 근거들은 바로 이런 것들이며 이것을 통해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육체의 소욕은 우리의 혼의 영역이 더러운 귀신의 영향력을 받으므로 영이 무능력하게 되도록 만드는 원인이다.
갈라디아서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체의 소욕을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갈라디아서5:19~21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
로 받지 못할 것이요.”
베드로전서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soul)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베드로전서4:1-2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육체의 소욕을 주장하는 것은 영의 무능력 상태가 우리에게 있다. 는 것을 말한다.
영의 무능력 상태에서 사단은 혼의 영역을 주장하게 되고 우리는 육체의 소욕을 따라 행사하는 더러운 영의 정욕을 제어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있는 육체에 거하는 악한 행위들에 대하여 심각한 고민을 고백하고 있다.
자신은 원하지 않지만 악한 것이 자신의 행동을 주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도 실수와 잘못을 범하기 때문에 세대를 통한 영향력과 상처로 인한 분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혼의 영역이 자꾸만 지배를 당하게 된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즉 선한 마음을 주장하고 있는 영은 성령께서 주장하고 임재 해 계시지만 혼의 영역에서 더러운 귀신의 영향력이 크게 되면 영은 혼의 영향력의 눌림을 당하기는 하지만 영의 영역을 침범 당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육체의 소욕대로 내가 원치 않는 그것을 하도록 조정하는 것은 “내 속에 거하는 죄”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롬7:18-23)
이것은 자신의 죄의 동기와 결과를 더러운 귀신에게 핑계대기 위함이 아니라 실재로 사단의 영향력에 의해 육체의 행동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롬7:18~23)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사단의 영향력은 혼의 영역에만 존재합니다.
우리의 영은 사단에게 침범당하거나 조정 당하지 않지만 혼의 영역이 죄로 가득해 그 영향력이 확대되면 우리의 몸은 육체의 소욕에 따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몸이 혼의 영역에 있는 사단의 더러운 귀신들의 영향력 하에 들어가면 육체는 죄를 짓게 그 죄는 우리를 멸망으로 인도하게 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의 상실(본래부터 구원받지 못한 자-예정론의 입장에서)이 옵니다.
그러나 회개하면(본래부터 구원이 예정된 자) 그 몸은 죽어도 그 영은 구원해 주십니다.
성도가 영의 무능력 상태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를 주장하시도록 죄로부터 멀리 벗어나야 합니다.
문제는 사단의 더러운 영들이 성도를 주장하게 만드는 원인이 “죄”라는 것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더러운 귀신에게 사로잡힌바 되는 결과의 책임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해결하지 않은 죄로 인해 자신의 혼의 영역이 더러운 귀신의 영향을 받고 살지만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정도가 심한 상태의 사람들에게는 더러운 영의 영향력이 강력해 지게 되고 귀신들림의 상태로 육체적 억압을 받게 되는 것이다.
더러운 귀신의 영향력이 들어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육체를 통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서 이런 귀신들림 상태가 육체적 억압 특히 질병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수없이 목격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한 질병의 경우 심각한 육체적, 정신적 억압을 가져오게 되기도 하지만 유전으로 이어지는 질병도 있으며 사람의 인격을 완전히 장악해 자신의 의지를 잃어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자신이 아닌 자신을 주장하고 있는 더러운 영의 지배를 당하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3. 귀신들림으로 오는 육체적, 정신적 영향력
점하는 귀신 - 사도행전16:16
옷을 입지도 않고 집에 거하지도 않고 - 누가복음8:27
소리를 지른다. - 마가복음1:23
심히 사나와 진다. - 마태복음8:28
육체적 질병을 가져온다. - 마태복음8:16
귀신들려 벙어리가 된 자 - 마태복음9:32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 - 마태복음12:22
침상에 누워있다 - 마가복음7:25-30
18년 동안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 누가복음13:11
중풍 병과 앉은뱅이 - 사도행전8:7
6000개의(군대) 귀신이 한 몸에 - 마가복음5:9
일곱의 귀신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 누가복음8:2
귀신들림이란(마4:24)? “악마에 의해 성거시게 괴롭힘을 당하다,” 혹은 “사로잡히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악마에 의해 성가시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내 의지 보다도 더러운 영에 의한 영향력이 더 강력하기 때문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자기 의지를 더 큰 힘에 의해 사로잡히게 되면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더러운 영에 의해 조정을 당하게 된다. 이 조정의 결과가 사람의 육체에 질병을 가져오게도 하며 마음과 정신을 주장하여 의지를 잃어버리고 비상식적인 사람의 행동을 일으키게 된다.
즉 더러운 영의 영향력은 사람의 몸과 정신을 모두 사로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교회 권사스쿨에서 충주 소년원을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고 아이들과 교제를 나누기 위해 설교부탁을 받고 아침 일찍 교회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을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날따라 의자에 앉기 보다는 출입구 쪽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사람들의 왕래를 지켜보고 있을 때, 대략 40대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 출입구를 들어와 나의 등 뒤로 돌아서더니 계속해서 처다 보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분이 조금 이상했지만 별일이야 있겠냐! 는 마음으로 서있는데 나의 등 뒤로 돌아온 그 사람은 두 손을 들어 나의 등에 살며시 손바닥을 밀착시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는 뒤돌아서서 그 사람을 처다 보며 물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하세요?”
그 사람은 출입구를 지나 계속해서 나의 등 뒤에서 머뭇거리며 저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그 눈을 대할 때 나의 느낌은 어떤 도움을 구하는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지만,
그 사람을 돌아보며 순간 들어온 생각은 이 사람에게서 귀신의 영향력이 느껴진 것입니다.
나는 오래전 전도사 시절 국제기능인 선교학교의 사무처장과 교감을 겸임하며 학생들을 지도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학교는 학생과 선생님들이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함께 살고 함께 공부하는 지금으로 말하면 대안학교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분당에 있는 학교에서 아주 끔직한 경험을 했었습니다. 30대 젊은 나이에 그날따라 교장선생님과 권사님 등 나이 많으신 분들이 학교를 떠나 외출 중이었고 세파란 선생님들과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였습니다.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러 나는 학생들을 전부 집합시켜놓고 단체기합을 주고 있었습니다. 해병대 출신이었던 저는 아이들을 차가운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조금 힘든 기합을 주고 있는데 그 중 평소 심상치 않았던 여학생이 실신을 했습니다.
나는 단체기합을 포기하고 그 학생을 방으로 보내 쉬게 하고 다들 방으로 돌아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교무실 뒤 방에서 비명소리와 함께 몇 명의 학생들이 도망치듯 뛰쳐나오며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단체 기합 중 실신한 여학생이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즉시 그 방으로 달려갔고 열려진 그 방의 광경은 정말 처음 보는 모습이었습니다.
여학생은 발작을 하듯 이상한 몸짓을 하고 있고 그 옆에 있던 학생들은 혼비백산하여 방을 뛰쳐나갔던 것입니다. 나는 학교에 있던 교사들을 불러내어 식당에 모두 모이게 한 후 함께 모여 기도하며 귀신을 대적했지만 우리는 정말 힘겨운 싸움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시간은 대충 저녁 10시경이었을 것입니다. 교사와 학생들은 서로들 둘러 앉아 귀신이 떠나가도록 기도하며 목소를 높였습니다.
귀신의 영향력으로 발작을 하던 학생은 오히려 잠잠히 지더니 이윽고 그 방에 있던 다른 학생들에게로 옮겨가 발작을 일으키게 하고 소리를 지르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계속해서 일어났고 같은 움직임이 이사람 저 사람에게 옮겨가며 장난을 치듯 괴롭히는 귀신들과 밤이 새도록 대적하였습니다. 새벽쯤 되어서야 학생들의 상태가 잠잠해 지자 나는 온몸이 지쳐 쓰러질듯 숙소로 올수 있었습니다. 처음 함께 기도하던 교사들은 제각기 자기 방으로 들어갔고 마지막 남은 사람은 나와 학생들뿐이었습니다. 그 방에 있던 아이들도 무서워 떨며 함께 기도했고 특히 평소 부모와 형제들에게 폭력적이었던 아이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고백함으로 전혀 새로운 아이 로 변화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지만 그날의 경험은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새파란 전도사 시절 경험한 귀신과의 첫 싸움에서 나는 철저하게 놀림꺼리가 되었고 그 때의 놀라움으로 다음날 청심환을 2개나 먹고도 진정하지 못했던 부끄러운 경험이 그 여인을 처다 보는 순간 되살아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귀신의 전략과 존재에 대한 대처 방법과 권세를 회복한 상태였기 때문에 오히려 그 때의 아픈 경험과 부끄러움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나를 바로 처다 보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내게서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십니까? 말씀하세요!”
계속해서 나의 눈을 바라보며 말할 것을 요구하자 그 사람은 눈을 피해 고개를 숙이며 말을 했습니다.
처음 나의 등 뒤에서 손을 내밀 때의 표정은 도움을 구하는 애처로운 모습이었지만 눈을 응시하며 말할 것을 요구하자 시선을 피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꾸만 몸이 아래로 내려가요. 서있을 수가 없어요."하며 주저앉으려고 하더니 "연신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하며 바닥으로 쓰러졌습니다.
그 사람은 쓰러지면서 몸을 뒤틀고 흰 거품을 입에 물며 이상한 모습으로 발작을 하려 했습니다.
저는 즉시 아주 조용하게 그 사람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에게 명령하노니 너는 이 사람에게서 어떤 영향력도 끼칠 수 없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며 거룩한 전이기 때문에 너는 즉시 이 사람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려는 행동을 멈출 지어다." 이 명령이 떨어지자 사람은 즉시 조용한 상태로 발작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사람에게 다시 자신의 의지가 돌아오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닥에서 일어날 것을 명령하자, 나의 입을 통해 떨어진 명령들은 계속해서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고 조용하고 평안해 졌습니다. 귀신에 의해 사로잡힌바 된 사람의 의지는 상실되고 귀신의 명령에 의해서 사람은 움직이게 된다. 사로잡힌바 된 사람들에게서 가장 심각한 것은 육체의 질병을 사단의 영향력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특히 유전이 되는 가족간의 질병은 영적 영향력에 의한 것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아버지의 아버지 혹은 그 시기를 알 수 없는 때부터 집안에 늘 따라 다니는 유전성 질병이 있다. 유전이 되는 질병들의 몇 가지 특성은 모두 가 비슷한 연령 대에 걸리고 비슷한 시기에 죽게 된다. 또 그런 질병이 오는 시기와 끝을 인정하고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마치 자신과 그 가족에게 주어진 운명처럼 받아들여 더 이상 어떤 대책을 세우려 하지 않는다.
질병이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려는 다른 한 가지는 시대적으로 일어나는 전염병이나 혹은 새롭게 일어나는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치병(?)과 같이 인간의 삶을 완전히 지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그 질병의 원인들은 늘 죄와 연관이 되어 있다.
성적 타락, 전쟁 등의 원인으로 이런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어떤 질병이든 불치병은 없다.
질병의 원인과 그 현상 뒤에 숨어있는 사단의 더러운 영들의 의도가 있다는 사실을 가진다면 우리가 질병에 대하여 대처하는 방법은 그리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물론 의학적 도움을 받고 그 증상들을 치료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 그렇게 증상들을 치료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려운 질병을 불치의 병이라는 진단을 가지고 환자와 치료자가 포기하는 것은 잘못된 대응 방법이다.
불치병은 없다.
심각한 질병 뒤에 숨어있는 더러운 영들의 의도를 찾아 대처해야 한다.
의사는 판단해서는 않된다.
의사는 다만 진단만 할 뿐이다.
인간의 생명이 달린 문제를 가지고 의사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나, 진단의 결과만 있을 뿐이다.
생명의 기한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에게 있으며 사단의 더러운 영은 그것을 결정지을 권한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자신에게 온 질병에 대하여 성령님께 물어보고 그 원인과 치료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대처해야 한다.
질병을 치료하시는 예수님은 간혹 아파하는 사람의 믿음을 요구하셨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질병을 고쳐 주셨지만 귀신들린 자를 향해 선포하실 때에는 그의 믿음을 요구하시지 않았다.
물론 어떤 경우는 귀신들린 자의 의지를 확인하시기도 했지만 예수님은 먼저 적극적으로 더러운 귀신을 향해 하나님의 권세로 선포하여 내 좇았다.
질병이 있는 사람과 그 질병 뒤에 숨어있는 더러운 귀신의 의도된 영향력일 경우 예수님은 질병을 치료하시지 않고 더러운 귀신을 내좇았다.(마9:32-33)
원인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좇아냈다는 것은 그 질병의 원인이 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귀신에게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Ⅲ. 더러운 귀신을 다루는 방법
죄 혹은 상처를 통해 사람의 혼에 들어와 육의 소욕을 더욱 부추김으로 영을 제한하여 더러운 귀신의 의도된 방향과 의지대로 그리스도인을 주장하게 되는 것을 귀신들림 이라고 한다.
더러운 귀신은 그리스도인의영에 침범하지는 못하지만 육의 소욕을 더 크게 일으켜 육체가 원하는 만큼 영의 영향력은 감소하게 된다.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지면 혼을 지배하는 더러운 귀신의 의지가 완전하게 사람의 의식을 지배하게 되는데 이 때 의학적 표현을 빌려 표현하면 “빙의”(憑依, possession) - “현상에 대하여 종교적 입장에서는 일반적으로 '귀신들림', '귀신에 씌움'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외적인 존재로 간주한다. 정신의학적 측면에서는 빙의현상을 개인내면의 또 다른 자아인 다중 성격적인 증상으로 진단한다. 인간에 내재된 악의 경향성에 대한 일련의 연구는 인간의 내면적인 부정적인 경향성이 종교적인 악마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조명하고 있다.” -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귀신들림에 관한 설명이다.) 상태라고 한다.
사람의 의지가 더러운 귀신에게 지배를 당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더러운 귀신을 좇아낸다고 해서 더러운 귀신이 들어와 의지를 주장하게 만들었던 죄와 상처라는 원인까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더러운 귀신을 좇아내는 것 자체와 그 원인 제거는 별개의 것이다.
일반적인 정신과 치료에서도 다중 인격 중 후군에 대한 치료의 접근을 육체적 질병의 차원이 아닌 그 원인을 찾아 환자로 하여금 인식하게 만들고 그 원인에 대한 상처를 들어내도록 돕는 차원에서 치료가 이루어진다. 더러운 귀신이 들어올 수 있도록 그 통로를 제공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더러운 귀신은 이런 통로 없이 자기의 의지대로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
항상 죄와 그 죄의 원인으로 내 안에 근거를 마련한 상처의 통로를 이용해 더러운 귀신의 존재가 들어오게 된다. 그러므로 더러운 귀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로 좇겨 났다고 해도 그 원인이 제거되지 않으면 또 다시 들어와 더 큰 능력으로 주장하게 된다.(마12:43~45)
더러운 귀신과 그 원인은 유기적 관계가 있지만 함께 움직이지는 않는다.
마치 푸른 초원에는 이로운 풀이 있지만 무성한 잡초도 함께 자라난다.
잡초를 제거하려면 위에 올라와 있는 풀과 그 가지만 제거해가지고는 불가능하다.
잡초의 줄기를 아무리 깨끗하게 제거를 해도 또 다시 잡초는 잎을 내고 가지를 뻗어 나간다.
잡초의 생명력은 줄기와 잎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강한 뿌리에 있다.
잡초를 완전하게 제거하려면 흙을 들어내서 그 속에 묻혀있는 뿌리를 모두 캐내야 한다.
잡초의 뿌리는 너무 깊고 광범위하다.
더러운 귀신을 좇아내는 경우 보다 더 깊이 다루어야할 문제는 죄와 상처에 관한 내용이다.
귀신은 “예수 그리스고의 이름”의 권세를 힙 입어 선포하면 그 앞에서 좇겨나지만 귀신이 좇겨 나간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귀신이 좇겨 난 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현상을 제거한 후 그 원인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자신에게 귀신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던 죄가 무엇인지, 상처가 어떤 것인지 그 문제를 집중해서 회개와 치유가 일어나야한다. 예수님은 귀신을 좇아내고 난 그 이후의 책임을 우리 자신들에게 맡기셨다. 죄를 회개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며,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모두 용서 하셨기 때문이다.
마12:43~45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예수님은 이미 모든 죄를 용서하셨고, 귀신을 내좇는 권세를 주셨고, 각종 질병과 더러운 귀신을 좇아 주셨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 대한 온전한 책임은 우리에게 맡기셨다.
귀신이 나간 이 후 깨끗하게 수리된 빈 집은 단지 더러운 귀신의 증세와 현상만을 다룬 것 뿐 이었다.
더러운 귀신이 머물던 집은 송두리째 기초공사까지 들어내어 없애 버려야한다.
귀신에게 집을 제공한 사람은 우리 자신이며 그 집은 죄와 상처들로 구성된 골조를 가지고, 각종 가구와 편의 시설까지 갖추어 주었다. 불필요한 집을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의 초점은 단지 더러운 귀신이 나간 그 자체만을 승리한 것으로 간주한다. 더러운 귀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아래 굴복하고 좇겨 나간 것은 분명한 승리이며 당연한 것이다.
그 다음은 우리가, 자기 자신이 해야 한다.
귀신이 나간 그 다음을 준비하고 신속하게 다시 돌아 올 집이 없도록 본래의 상태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죄를 회개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앞에 성경교재에서 “상처회복”을 참고)
거기서 멈추지 말고 그 다음으로 반드시 우리는 나가야 한다.
1. 예수님이 더러운 귀신을 다루신 방법
말씀("his word" 로고스)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 마태복음8:16
나갈 것을 허락하심 - 마태복음8:32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 마가복음1:25
꾸짖고 명하사 - 마가복음9:25
“꾸짖다” (rebuked) 예수님의 첫 번째 귀신 쫓는 방법은 꾸짖는 것이었다.
“꾸짖다”라는 말은 ‘비난하다,’ ‘책망하다,’ ‘훈계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동등한 인격으로 대우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왜, 그 사람에게 들어가 그를 주장하고 있느냐?”라고 더러운 귀신에게 화를 내고 계신다.
더러운 귀신은 동등한 인격으로 대하실 수가 없는 이유는 사단의 추종 자가된 더러운 귀신은, 하나님의 일을 수종들게 하려고 창조한 영적 존재 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창조주를 섬기는 존재로 창조하셨지만 사단의 추종자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하는 인간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허락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비인격적인 존재로 간주하셨고 귀신을 향해 꾸짖고 계신다.
“명령하셨다.”(charge, command) '정리하다,' '질서를 세우다,' '지령을 내리다,' '지시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에게 복종을 지시하는 명령권자로 대하셨다.
더러운 귀신은 예수님의 명령 앞에 복종해야만 한다.
예수님의 명령에 항거하거나 불복할 수가 없다.
사단과 더러운 귀신들은 한 때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세상의 권세를 잡고 있었다.
온 세상이 죄로 오염되어 모든 인간이 타락한 세상은 사단과 그의 더러운 귀신들의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단의 권세를 꺾으셨고 십자가에서 세상의 모든 죄를 용서하심으로 사단과 더러운 귀신이 더 이상 예수의 이름과 보혈 앞에서 자신들의 권세를 주장 할 수없도록 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가지고 다스리시고 명령하셨다.
그 권위와 권세는 누구도 항거할 수 없으며 예수님의 피가 그것을 보증하고 있다.
“말씀으로”(logos), 말씀되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권세를 말한다.
로고스로서의 말씀은 예수님 그 자신을 말하고 있다.
구약에서 수없이 예언되어진 메시야에 대한 말씀들은 신약에서 메시야의 출현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
말씀으로 예언되어진 그분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예수님은 그 말씀되신 자신의 권세를 가지고 더러운 귀신을 꾸짖고 내쫓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할 근거가 여기 제시되어 있다.
더러운 귀신은 오랜 세월 동안 메시야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그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더러운 귀신들을 향해 명령하신다.
“더러운 귀신아 나가!” 그 권세를 이제 우리가 사용해야한다.
말씀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힘입어 사단과 더러운 귀신을 향해 꾸짖고 명령해야 한다.
담대하게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서 명령하라!
지금 즉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가!”라고
2. 제자(사도)들과 72인 전도 대, 초대교회 집사들
(72인)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항복하다 - 누가복음10:17
(빌립)천국 복음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을 듣고 - 사도행전8:4-7
(바울)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자 - 사도행전16:18)
(베드로)귀신들린 자를 다 고쳐주다 - 사도행전5:16
사도들과 초대교회 집사, 72인의 전도 대는 그들 앞에 있는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고 치유하고 모두 내쫓아 주었다. 베드로의 경우 그에게 온 모든(every one)사람들과 누구든(and they)지 그들에게서 귀신을 내쫓고 질병을 치료했다. 그것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명령했을 뿐이다.
예수님은 귀신을 내쫓고 병일 치유하는 권세를 사용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마8:10)
Ⅳ. 중보 사역을 할 때 알아야 할 몇 가지 상식들
1. 성령님께 물어보라!
귀신 들린 자 혹은 질병을 치유하기위해 부탁을 받거나 기도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먼저 홀로 조용히 앉아 성령님께 물어보아야 한다.
“이 사람을 제가 기도하고 위하여 더러운 귀신을 내쫓는 것을 저에게 허락하셨습니까?”
“제가 저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물어보아야 한다.
어떤 경우 질병에 걸린 자나 혹은 귀신의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자신이 원하지 않거나 불신 가운데 있다면 성령께서 막으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나의 기도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환자에게 더욱 큰 불신의 마음만 심어줄 수 있기 때문에 먼저 성령께서 허락하시는가? 를 물어 보고 행동해야 한다.
본인의 의지만 앞세워 움직이면 실수하기가 싶다.
항상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 본인의 의사를 물어보라!
대체로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나 더욱이 더러운 귀신에 들린 사람은 영적으로 상당히 피폐해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의지를 잃어버린 환자나 귀신들린 사람의 경우 성령의 인도를 따라 대처해야 하지만 자기의식이 분명하다면 본인의 의사를 한번 물어 보아야 한다.
많은 환자들의 질병에는 상당한 상처와 죄의 요소들이 있다.
그것을 알고 있는 경우가 또 대부분이다.
그러나 자신의 죄와 허물을 인정하거나 그것과 질병 혹은 귀신의 영향력의 관계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병 낫기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이 상당히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본인의 마음이 그렇게 해주기를 원한다면 상당히 긍정적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기다려주는 것도 필요하다. 문제는 증상보다는 그 원인을 제거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3. 중보 사역을 하기 전 자신과 가족을 위해 성령님의 보호를 요청하라!
나는 몇 번 귀신을 내쫓고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 기도하기를 원하는 집과 사람을 위해 중보사역을 했던 경험이 있다. 환자들을 만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알게 된 것은 그런 기도를 하고난 후 꼭 우리 가족에게 약간의 문제들이 발생하곤 했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는 딸(10살)아이와 고등학생인 아들이 있다.
내가 기;도하고 집에 오면 그 날 저녁 꼭 아이들과 아내가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프고 아들에게 갑자기 통증이 찾아오곤 했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라 약을 먹기도 하고 치료를 위해 뜸을 놓기도 했지만 그 연관성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꼭 중보 사역을 하기 전 우리 가족을 보호하는 선포를 잊지 않는다.
“ooo에게 내가 성령의 이중 보호막을 씌우노라!”
“ooo를 예수 보혈로 덮노라!”
“머리에서 발끝까지 영에서 육체까지”라며 항상 먼저 보호를 요청하는 선포와 기도를 한다.
그 후부터 우리 집에는 갑작스런 통증을 호소하거나 아프다고 우는 일이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