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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은사

영적전쟁

제목Longman의 영적 전쟁2025-01-18 23:37
작성자 Level 10

이 글은 밥벌트 롱맨이 “영적 전쟁 컨퍼런스”에서 주제 강의로 행한 내용을 여기에 소개합니다.

 

영적 전쟁이란 무엇인가?
영적 전쟁이란 이 물질적 세계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를 될수록 많이 반영하는 삶을 살기 위한 투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려는 열망으로 일하는 힘이므로 전쟁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책임을 지지만 그러나 완전한 반역의 의지를 지닌 원수가 있고, 도처에서 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반역의 힘도 역시 보이지 않습니다. 육체적이 아니며 초자연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보이는 세상 즉 물질적인 것에 그 힘을 드러냅니다. 그 싸움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진행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것은 모든 지상의 구석구석마다 존재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작정하면 자신의 삶에 주님의 지배권을 인정하게 되며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런 의미입니다. 즉 주권과 지배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당신이 자신의 자리를 예수님에게 내어주려고 하지만 예전의 당신은 이를 싫어합니다.
마귀와 그의 거짓 약속에 대한 투쟁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두 번째 사람“의 문제이며, 그리스도 자신의 일이기도 합니다. 성령은 이 투쟁에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이 영적 전쟁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직접 언급한 것은 바울의 에베소서 6장에서입니다. 여기서 그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중심절이 12절인데 “우리의 싸움은 인간을 적대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미 패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할 수만 있다면 많은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상처 내는 일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에 아무리 성공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부모가 잃은 아이를 대하는 것과 같은 그런 아픔을 느낍니다. 이런 종류의 악의는 마귀의 특성을 잘 드러낼 뿐입니다. 

 

전쟁 이야기
그리스도인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전쟁’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를 즐겨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저 자신도 이 이미저리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쟁은 끔찍한 일이며, 우리는 평화의 왕자를 따릅니다. 그러나 성경적 이미저리는 전쟁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이를 부인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조만간 가장 험악한 전투를 버리게 될 사람들은 자신들이 전쟁을 좋아하는 쪽으로 기울어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싸움에 말려들어가기 보다는 지옥에 빠져들어갈 것입니다. 전쟁 이미저리는 이를 정확하게 받아들이며 다른 이미저리가 아직 접근하지 못한 부분을 감정적 연결로 이어줍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미저리가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으며, 그러므로 이것이 사용될 경우 요점은 신자나 비신자나 다 같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싸우는 것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한다고 여기지만, 전쟁 언어는 초자연적인 왕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영웅적(서사적) 몫을 성공적으로 파악하는 바로 그 언어입니다. 대용으로 사용되기를 원하며, 비판적으로 폭넓게 사용되는 ‘전쟁 이야기’는 지금도 단순하게 사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매우 다른 무기를 사용하도록 요구 받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도구입니다. 바울은 평화의 복음의 신을 신고,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성령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표현했습니다.(엡 6:10~18). 이들은 거의 원폭이나 대포나 함포 수준입니다. 이런 무기는 마귀의 악한 일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평안을 유지하게 하는 담장입니다. 고대 유대 시절 여호사밧 왕이 문자 그대로 ‘평화의 무기’를 취했습니다. 병사들 앞에 찬양대를 세우고 찬양을 시작하자 적들은 서로 자기들끼리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 공과는 하나님이 악을 이기게 하시는 원칙입니다.

전술
이는 선한 믿음뿐만 아니라 때로는 악과는 반대되는 길로 나가는 행동을 취하게 하는 선한 전술이기도 합니다. 화가 나는 경우 안정을 취하는 행동을 하면 차분해집니다. 탐심이 생기면 나누어주기 시작하십시오.ㅡ분명히 전염이 될 것입니다. 이기심이 심해지면 모든 사람들을 섬기십시오. 그러면 대적하던 사람들이 당신을 변호할 것입니다. 뒤에서 헐뜯고 모함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을 높이는 말을 하십시오. 그러면 그 독성이 제거될 것입니다. 분열이 있는 곳에 함께 하는 길을 찾으십시오. 그러면 놀라운 연합을 이룰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기꺼이 행하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악한 것을 제거할 수 있게 됩니다. 당신이 악의 이름을 지장 없이 지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행위와 태도는 말로 할 수 없는 진실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내가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다면 어쩌리요?
영적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는 첫째요 최고인 사랑의 역사입니다. 아니 다툼에 대한 사랑이거나 또는 ‘영혼 구원’을 위한 사랑이거나 혹은 승리를 위한 사랑.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사랑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랑입니다. 이것은 우리 각자와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할 수 있는 보다 쉬운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정서적 치장과 삶의 정황은 그들의 사랑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에 보다 더 쉽게 합니다. 당신이 사랑을 받기 보다는 주는 것이 더욱 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을 더 힘들어합니다. 그들은 조롱하기, 두려움, 압박, 심리적 질병 등의 무거운 부담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욱 심하게 말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표현한 경험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에 대한 개념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며 그래서 줄줄 모릅니다.
영적 전쟁을 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사랑을 드러낸 사람이 없으므로 이 진리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7:7에서 예수는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성령은 당신에게 이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처럼 이것도 역시 실현될 것입니다. 이것은 힘들고 규칙적인 기도를 필요로 하며, 때로는 힘든 공과가 될 것입니다. 당신에게서 사랑이 넘쳐나오기 위해서 시작하십시오. 만약 사랑이 없다면 전쟁에 무장하지 않고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전선(戰線)과 맞서는 것입니다. 

 

영적 안녕
어떤 사람은 ‘영적 전쟁’(spiritual warfare)을 ‘영적 안녕’(spiritual welfare)이라는 관념으로만 시작합니다. 둘 다 ‘welfare'라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안녕‘이란 영적으로 좋은 상태를 말합니다. 사단은 약점을 찾고 우리들이 수치를 느낄 그런 삶을 폭로합니다. 주님에게 향하는 행위나 하나님과 친근함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면 누구나 해야 하는 영적 훈련의 모든 것입니다. 누군가가 그것을 행할 때 사단에게 시험 당할 기화가 줄어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영적 안녕을 위해서 기도함으로써 사단과 싸웁니다. (이는 사랑이 넘치는 ’중보기도‘의 형태입니다.)
'복지‘는 사회봉사 프로그램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을 지원할 길이 없으므로 영적으로 방랑자인 샘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영적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자원만을 의지한다면, 우리는 거미줄에 걸려 거미 밥이 될 것입니다. 영적 전쟁에서는 개인적 자만이 설 곳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승리ㅡ빈 무덤ㅡ를 서로 나누며 하나님의 희생ㅡ십자가ㅡ을 나눌 뿐입니다. 십자가는 자기를 포기하는 순간입니다. 거기서 영적 전쟁은 시작됩니다.

어떤 진실이 우리를 자유게 하는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표면적인 지식을 가지고는 마귀에 대항해서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더 많이 알수록 사단은 우리의 마음에 갈등이 생기도록 더 많은 곳에서 도전을 합니다. 당신의 지식을 외곡시키는 사단의 행위를 정지시키는 법을 알 수 있다면 사단은 당신의 몸을 이용하여 사건을 일으키고 감각을 자극하거나 질병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우리를 자유케하는 진리가 있습니다. 한 가지 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능력을 주시는 것이며, 다른 진리는 그리스도를 주시는 것입니다. 주요 진리는 인격이지 사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의 자유는 인격과의 관계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관계성에서 행동함으로써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됩니다. 생각, 지식, 느낌, 경험, 기억, 행동, 취향, 시기 등입니다. 당신에게 관여 된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사단이 부리는 영이 접근한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이미 그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마귀의 가장 악한 부분마저도 하나님으로 인해서 선한 것으로 분명히 바뀌게 됩니다. 영적 싸움에서 승리한 그리스도는 그 전쟁을 이긴 동일한 그리스도입니다. 이런 사실 이상으로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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