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전쟁의 3가지 측면 - 2) 진리대결
능력 대결이란 잘 알려진 개념입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이러한 부류의 책들을 보기가 힘들었지만 지금은
많이 접할 수 있고 또 기도원 같은 곳에 가보면 그런 비슷한 이야기들을
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 대결이란 개념은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개념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아마 닐 앤더슨 목사님이 처음으로 사용했고, 가르치는
개념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책은 죠이 선교회에서 출간된 <이제 자유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이제 알았습니다> 등의 책을 보면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진리 대결이란 마귀와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은 기도를 많이 해서
능력을 받아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기록된 진리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에 승패가 달려있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즉 주님께서 약속한 우리의 자녀됨의 권세, 위치를 바로 깨닫게 될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마귀로부터 자유와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학생 시절 나는 어는 교회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도심에 있는 유서 깊은 아름다운 교회였는데 항상 본당이
개방되어 있어서 나는 데이트를 할 때나 그곳을 지날 때는 그곳에 들러서
기도하고 가곤 했습니다.
한참 기도에 몰두하고 있는데 저만치 앞에서 기도하는 젊은 남자의
기도하는 모습이 아주 묘했습니다.
뭔가 중얼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욕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또 온 몸을 경련하듯이 좌우로 부자연스럽게 움직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여튼 정상은 아니었습니다.
호기심으로 가까이 가보니 그는 깨끗한 신사복에 얼굴도 미남형이었습니다.
그의 자세는 기도하는 자세인데 뭔가 욕지거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산당 녀석들! 나쁜 놈! 뭐 그런 식의 말들이었습니다.
그는 문득 내가 그를 지켜보고 있는 것을 느끼고, 정상적인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시며...”
그러나 그것은 그의 안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이 자신을 감추기 위하여
기도하는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경험과 분별력이 부족했던 나는 덥석 그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살아 계신 주님! 이 청년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리고는 그를 지배하고 있는 악한 영을 꾸짖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악한 세력은 떠나가라!”
나는 그 당시만 해도 악한 영들이 사람의 속에 들어오는 것은 뭔가
먹을 것이 있기 때문이며 이런 조건들을 처리해야 하는 것을 몰랐습니다.
쓰레기를 치우지 않으면 파리 떼를 근본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악한 영의 먹이들은 분노, 억울함, 강한 증오, 용서하지 않음, 육적인 욕망,
상처.. 등 다양하고 많습니다.
나는 그때에는 이러한 쓰레기들과 악한 세력과의 관련성을 몰랐기 때문에
치유나 상담 등을 하지 않고 그저 능력을 받아서 마귀를 쫓아내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나의 기도가 시작되자 그 청년은 나를 비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나를 쳐다보며 웃었습니다.
“나를 보고 나가라고? 넌 아직 멀었어. 기도가 부족해.
내가 볼 때 넌 아직 약해.”
그 순간 나는 기가 팍 죽었습니다.
‘아, 맞아. 나는 아직 멀었어. 기도도 부족하고 능력도 부족하지.’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나는 기도를 조금 더 하다가 도망치듯이
교회를 빠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과연 나는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도망칠 수밖에 없었을까요?
물론 그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그 이후 악한 영들을 더러 쫓아내는 경험을 했을 때, 나는 악한 영들이
그렇게 상투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위협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순진하게도 거기에 속아버린 것입니다.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잘 알지 못하며 제대로
믿지 않으면 이와 같은 귀신의 말을 믿게 되고 자기의 주관적인 감정과
경험을 믿게 되며 거기에다 신앙의 기초를 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시적으로는 승리를 하는 것 같지만 진리와 지식의 부족으로
인하여 자주 혼돈과 미혹에 빠질 수 밖 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첫 번째 단계의 능력과 권능의 신앙은 초보적이고 자연적인 단계입니다.
이 때는 아직 사고의 수준이 육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무조건
외적으로 형통하고 복 받고 건강하고 문제가 없으면 좋은 줄 압니다.
생명의 성장을 위한 고난이 오면 그것이 영원한 보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보화를 주면 통곡하고 쓰레기를 주면 기뻐하는데 그 모든 것들이 아직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단계의 진리적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의 중심과 원리를 이해하고
깨닫고 체험하여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단계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의 이론으로 알 뿐 실제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그들의 지식은 그저 여러 번 듣고 지적으로 이해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모태신앙이다, 무슨 훈련을 받았다, 무슨 단계를 떼었다.. 하는
분들이 극단적인 상황에 가면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가.. 하고 낙심하며
실족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입니다.
사실 이 경우는 신앙이 실족했다기 보다는 원래의 신앙을 드러낸 것입니다.
주님께서 환란을 통하여 자신의 본체를 보여주신 것이므로 사실
그것은 복이 되는 것입니다.
진리의 체험은 이 기초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됨의 권세를 가진 것,
용서받은 것, 아버지께서 우리를 받아주신, 십자가의 도, 사탄의 패배,
우주와 세상과 하나님의 계획, 이런 것들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우리의 뼈 속까지 스며들어 나의 실체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말씀, 그 진리가 우리 안에 실체가 될 때 우리는
마귀를 이기게 되며 자기의 생각과 경험을 믿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진리로서 영적 대결에서 승리하는 길인 것입니다.
오늘날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면서 실제적인 진리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세상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육신의 정욕과 세상 근심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어둠의 왕국 속에서 살며 어둠의 세력들에게 짓밟혀
사는 것이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진리의 빛이 분명해 질수록 우리는 변화됩니다.
그리고 자유롭게 됩니다.
그리고 보게됩니다.
예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 자신의 사명, 가는 일, 의미.. 그 모든 것들이 말씀의
빛을 통해서 하나씩 드러나게 됩니다.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말씀의 빛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거짓의 영들에게 속는 것입니다.
마귀와의 능력 대결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 깊은 진리를
깨달아 진리의 대결에서 승리할 때 우리는 좀 더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