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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전쟁

제목순결함의 갈망2025-01-19 22:20
작성자 Level 10

순결함의 갈망

  

생명에는 순결함이 있습니다.

순결함은 생명을 유지시키며 충만하게 합니다.

불결한 것은 좋지 않습니다.

누구나 더러운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합니다.

깨끗한 것은 아름다운 것이며 생명적인 것입니다.

 

순결함을 잃게 하는 것이 더러움이며 섞임입니다.

섞임은 혼합된 것입니다.

혼합된 것은 생명을 약하게 합니다.

사람의 몸에 흐르는 피에 불순물을 섞어보십시오.

그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죽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망에는 섞임이 있습니다.

성분이 다른 것의 섞임이 있습니다.

연합은 같은 성분을 가진 것이 합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혼합은 다른 성분이 합쳐지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문명과 문화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은 혼합으로부터 옵니다.

 

동양의 문명이나 고대 문명에는 섞임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자연에다가 무엇을 섞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최대한 자연을 지키고 보존하였습니다.

자연을 바꾸고 변화시키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서양인들, 오늘날의 문명인들은 섞음과 혼합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고유한 물질에 무엇인가를 섞어서 죽음의 물질을 만들어냅니다.

석유를 만들고 비닐을 만들고 나일론을 만들고 분해되지 않는 많은 물질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지구를 파괴합니다.

그것들은 몸속에 들어있는 암 덩어리와 같은 것입니다.

지구는 몸속의 암덩어리를 처리하기 위하여 오랫동안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그 혼합된 물질들은 땅을 파괴하고 기후를 변화시키며

바다도, 하늘도 모든 것을 오염시키고 죽게 합니다.

 

어느 인디언 추장은 말합니다.

백인들은 재앙이다. 그들이 있는 곳에는 모든 것이 썩는다.

백인들이 머무른 곳의 물도 썩고 땅도 썩는다.

그들의 자취가 지나간 곳의 물은 마실 수 없다.

그들이 지나간 땅은 정화시키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들은 지구를 파괴하는 존재들이다.

우리는 그들의 손에 닿은 것들을 만지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들은 재앙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재앙은 섞임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창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물질을

서로 섞음으로서 편리한 물질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섞음을 통하여 만들어낸 혼합물들은 당장은 유용하고 좋은 것 같지만

결국은 생명을 파괴하고 죽음을 이끌어낼 뿐입니다.

 

성경은 섞임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19장 1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성분이 다른 것이 섞이는 것은 잘못인 것을 성경은 분명히 경고합니다.

인간의 문화는 섞임이며 혼합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사망이 있습니다.

섞음은 생명을 죽입니다.

신명기 22장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이니라

 

오늘날의 문화는 하나님을 대적하며 구별을 싫어하고 섞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가증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섞임을 싫어하시며 거룩과 순결을 기뻐하십니다.

 

오늘날의 문화는 섞임의 문화입니다.

세상은 편리함을 위하여 생명을 혼합시키는 것을 가볍게 여깁니다.

그것이 이 시대의 성향입니다.

죄란 곧 섞임입니다. 그것은 정말 무서운 섞임입니다.

이 시대에 이러한 무서운 섞임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많은 섞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사상, 성경의 사상에 세상의 사상이 섞여있습니다.

고린도후서 2장 17절은 말합니다.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오늘날 많은 사상이 하나님에게서 나오지 않고 세상에서 나옵니다.

또한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에 세상의 것을 덧붙입니다. 그것이 섞임입니다.

그러한 많은 혼잡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 가운데

인간의 정신력이나 신념이 섞여 있습니다.

믿음의 시인 가운데 최면적인 암시가 섞여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치유의 능력 가운데

배후가 분명하지 않은 치유의 영이 섞여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과 은사가운데

뉴에이지적인 영의 섞임이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세상 사랑이 섞여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세상을 사랑합니다.

삼손이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들릴라를 사랑했듯이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섞임의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안에 주님을 모시고 있으면서

동시에 세상의 쾌락들을 즐거워하고 사랑합니다.

이것이 섞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혼을 병들게 하고 혼미해지게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러한 쾌락들을 통하여 기쁨을 누릴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순결함을 통해서만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의 죄와 쾌락을 우리 안에 받아들일 때 그것은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을 아프게 합니다.

그리고 주의 영과 연합된 우리의 영을 아프게 하고 상하게 합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란 자기 안에 계신 주님의 영에

세상에 속한 것을 섞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주의 영을 고통스럽게 해서는 안 됩니다.

주의 영은 우리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시며 고통을 겪으십니다.

우리 안에 세상이 들어오는 순간, 우리 영은 병들기 시작합니다.

영적 생명은 죽어가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세상에 섞이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을 즐기며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섞임입니다. 그들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순결함을 사모해야 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이 얼마나 악하고 음란한 세대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타락하기 위하여 멀리 이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앉아있는 책상에서 인터넷을 보면서 잠시 손가락 한 개를 움직이는 것으로,

클릭한번 하는 것으로 우리는 각종 혼잡함으로,

더러움으로, 음란함으로 충만해질 수 있습니다.

 

포털사이트의 시작화면 하나만 보아도

수많은 선정적인 기사와 선정적인 사진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크게 입을 벌리고 있는 지옥의 함정과 같은 것입니다.

쉽게, 가볍게 생각하고 함부로 그것들을 클릭하지 마십시오.

잠시의 호기심으로 당신의 영혼은

지옥의 가득한 재앙과 저주로 충만해질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음란함은 소돔과 고모라도 가히 따라오지 못할 정도입니다.

우리는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를 보기만 해도

온 세상의 모든 사악함과 더러움을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움 없이 함부로 손가락을 사용하면서

자신의 영혼을 정결하게 지킬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삼손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도, 다윗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도

잠시의 유혹에 휘말려 눈을 뽑히고 온갖 치명적인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당신이 그들보다 더 영적이며 우월하다고 자신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내주하시는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누리기 원한다면,

진정 주님을 사랑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그 사랑에 세상의 사랑을 섞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구별되어야 합니다.

섞임은 죽음입니다. 재앙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오직 순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덕목이 겸손이라면

두 번째는 순결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대의 문화는 악하고 음란합니다.

주님께서는 2천년 전의 시대에 이미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문화는 그 시대의 악과 음란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많은 젊은 여성들이, 어린 학생들까지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거나 몸에 밀착된 옷을 입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적지 않은 여성들이 그러한 행동을 합니다.

세상에 속한 남성들은 그러한 옷차림을 즐거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속한 남성들, 순결함을 갈망하는 남성들은

그러한 옷차림으로 인하여 심한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이 여성들은 자신의 행동이 악한 영들의 도구가 되며

수많은 영혼들을 파괴하고 타락시킨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단순히 멋을 위하여 입은 그러한 옷차림 하나가

얼마나 자신들의 영혼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고

영혼을 완악하고 더럽게 하는 지에 대해서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알지 못하고 행하는 악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의 악을 피해야 합니다.

세상의 악에 물들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보다 높은 자기의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도덕적 기준은 세상의 기준보다 높아야 합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킴으로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도덕과 윤리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함을 사모해야 합니다.

순결함을 사모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세상의 기준보다 낮은 도덕관,

죄관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입으로 주님을 시인하고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면서

세상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도

아주 낮은 도덕 수준을 보여주는 이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며 복음을 가리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기준보다 나은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진정 사랑하기 원한다면 그 사랑에 세상적인 사랑을 섞어서는 안 됩니다.

아내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여성을 쳐다보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아름다운 저녁 식사의 교제를 원한다면

다른 여성을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순결함이 있을 때 거기에 아름다운 교제가 있으며 기쁨이 있습니다.

당신이 주의 이름을 부를 때 가까우신 주의 응답하심과 달콤함이 없다면

당신의 안에서 깊은 기쁨과 감격이 없다면

당신의 심령은 건강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자신이 주님과 세상을 섞은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신이 주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죄와 순결함에 대한 당신의 기준이 어떠한 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에게도 구체적인 삶에 있어서 여러 기준들이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기준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이성에 대한 나의 기준은 아내와 딸을 제외하고는

이성과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같이

1분이라도 1:1로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없이 개인적으로 이성과 만나는 일은 없습니다.

 

아마 최근 7-8년을 돌이켜보면 이 기준을 넘은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아마 한두 번 정도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러한 기준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감옥에 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보통의 기준보다 좀 더 나은 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순결함의 발전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기준 중의 하나는 하루를 시작할 때 반드시 성경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항상 아침에 깨자마자 성경을 읽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것을 그냥 넘어갔다면 그것은 나에게는 범죄행위입니다.

 

내가 성경을 보기 전에 신문을 보았다면 그것은 내가

성경의 진리보다 세상의 지식을 더 사랑하며 중시하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성경을 읽기 전에 음식을 먼저 먹었다면 그것은 내가

영의 양식보다 육체의 양식을 더 사랑하며 중요히 여긴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내게 있어서 범죄행위입니다.

 

아침에 성경을 읽지 않고 하루를 시작했다고 해서 그것이 감옥에 가는 죄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기준입니다.

그것은 충만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순결한 삶을 위한 도움이 되는 기준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그가 말하는 것, 그가 생각하는 것,

그가 나에게 원하는 것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모순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자주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나를 향한 주님의 계획과 말씀하심과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므로 아내가 무슨 말을 할 때 집중하고 귀를 기울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듣고 의견을 말하며 칭찬을 하기도 하고

단순히 듣기만 하기도 합니다.

아내는 이야기 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므로 나는 주로 많이 듣는 편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내는 아주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우리의 대화에는 웃음과 장난과 폭소가 끊이지 않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듣는 것은 교제를 풍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고 집중하고 수시로 묵상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마땅히 할 일입니다.

 

아침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지 않는 것은 범죄 행위다.. 라는 것은 나의 기준일 뿐입니다.

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렇게 권면하고 가르치지만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은 율법이 아닌가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라면 다른 방식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각자의 문제입니다.

 

아침마다 식사를 하는 것이 즐거운 사람도 있고 그것이 율법처럼 느껴지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각자가 선택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다만 상대를 진정 사랑한다면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을 말씀하는 것일까,

그가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성경에 대해서, 기도에 대해서, 대인관계에 대해서,

물질에 대하여, 감정의 절제나 사용에 대해서..

우리는 자기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세상보다 높아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쉽게 남을 판단하고 쉽게 화를 내고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들은 너무 낮은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쉽게 거짓말을 하고 그것을 가볍게 여깁니다.

그들은 너무 낮은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시간이나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잘 지키지 않으며

그것으로 남을 불편하게 하고도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들은 너무 낮은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잘못을 하고 나서 그것을 깨달은 후에도

자존심으로 인하여 잘못을 시인하지 않으며

잘못을 수정하지 않으며 사과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용서와 주의 긍휼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을 수 없으며

수정하지 않는 잘못은 그대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그러한 자세도 너무 낮은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소한 일상의 삶에서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만을 챙기면서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면, 그것은 낮은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순결한 삶의 자세가 아니며 주님을 사랑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그러한 낮은 기준으로는 아무리 많은 시간을 기도해도

깊은 주님의 임재로 나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이들은 오랜 시간을 본능의 수준에서, 탐욕의 수준에서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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