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살아 계신 거 맞아? 신유란 글자 그대로 하나님의 치료하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질병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고쳐주심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전에 잘 믿었든지, 안 믿었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란 현재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유의 은사는 그렇게 쉽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어떤 교인들은 암병에 걸려서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이 고쳐 주셨는데 병원에가서 진찰해보니 암세포가 없어졌다고 하더라고 하는 간증도 여러 번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런 간증처럼 되어지지가 않습니다. 언젠가 기도원에 갔는데 척 보기에도 중환자였어요. 그 사람은... 과연 어떻게 기도하여야 좋을지 ... 별스럽게 기도해보아야 뾰족한 응답은 없고 ... 지치고 낮은 음성으로 그저 주기도문만 외우고 있었습니다. 나라고 무슨 도움을 줄 형편도 못되고, 눈물 없이는 더이상 지켜볼 수도 없어서 속히 외면을 하고 말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이런 불쌍한 사람들을 왜 보란듯이 고쳐주시지 않는가? 야속하기도 하고 과연 하나님이 살아계신거 맞아? 라고 다시 생각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는 분명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신유의 원리 사람이 죽고사는 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사람이 나서, 늙고 병약해지는 것도 자연의 이치일 뿐입니다. 사람이 섭생을 부주의하면 병에 걸리는 것도 당연한 자연의 이치이고 선천적인 신체적 결함이 있어서 병에 걸리는 것도 자연의 일일뿐입니다. 우리가 텔레비젼 같은데서 동물의 왕국 프로그램을 보면 자연 속의 동물들이 그렇게 나기도 하고 죽기도 하며 살아갑니다.
초연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자연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는 것과 죽는것, 있는 것과 없는 것, 부와 빈, 그 무엇에도 연연함이 없고 얽매임이 없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삶 역시 자연스럽게 되어지도록 하시므로 그 안에서 혹은 병들고, 혹은 약한 자가 강한 자의 발에 짓밟힌다해도 그저 그런 자연스러운 세상일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원망할 까닭은 없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스스로 잘 살아가도록 강인한 힘을 기르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어떤 종교는 그런 세상의 질고풍상에 대해 삼라만상이 무상한 것이니 나고, 죽는 일에 얽매이지 말고 초연하라고 가르칩니다. 만사에 아집을 버리고 도에 귀의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세상 고통을 잊는 한 방편은 될수 있겠네요.... 그러면 하나님은 왜 불공평하게스리 어떤 사람은 병 낫게 해주시고 어떤 사람은 안 고쳐주십니까? 하고 물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원망할 수는 없습니다. 병걸린 책임은 어디까지나 인간에게 있는 것이고 하나님은 자연의 이치대로 운용하실뿐이지요. 당연히 죽을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몇몇을 불쌍히 여겨서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해서 하나님께 힐문할 수는 없다는 말이지요. 사람이 하나님의 자비를 그르다 해서는 안 되고, 단지 나에게도 그 같은 은혜를 주십시오! 라고 기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푸십니까? 우리가 성경을 알면 그 안에 모든 하나님의 구원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지면상 단지 요점을 간략히 말씀드릴 수 밖에 없겠네요. 성경은, 이 세상에 질고가 들어온 것은 처음 사람 '아담'이 마귀의 꾀임에 빠져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결과로 - 즉 마귀의 악이 인간 세상에 유입되고부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담의 모든 후손은 결국 한 아담의 분신입니다. 그러니 아담이 당해야 할, "불순종에 대해 유입된 악의 소산"을 그의 분신들인 우리 후손들이 모두 함께 당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처음 사람 아담의 실수에 대해 당장에 인간세상을 종말지으시지 않고 구원의 때를 남겨 놓으셨습니다. 그의 후손들을 통해 악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마귀에게 유혹과 속임을 당한 아담인지라 그의 자손들 역시 조상을 닮아 점점 더 악해질 뿐이지요... 이를 모르실리 없는 하나님께서 한 계획을 세우셨는데 "그리스도(구세주)"를 통하여 마귀를 이기고 인류가 승리할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을 성경에 기록하였습니다.
인류는 너, 나 할 것없이 본질상 저주와 진노의 자식들입니다. 그 증거는 우리 안에 있는 악한 마음들입니다. 마귀의 유혹에 연약한 인간성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길을 베푸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마귀의 괴계를 이길 방법을 세우셨는데, 그리스도가 인간으로 나시고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속죄의 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그 모진 십자가의 고통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그가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고통의 벌을 당하심으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시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고, 그가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를 용서하시고 처음 사람 아담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과 자비를 더하셔서 신유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육체로 오셨을 때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모두 이루어지게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믿고 속죄의 기도를 드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신유의 은사를 베풀어주십니다.
신유의 순서 누가 옷이 더러워지면 그 옷을 깨끗이 세탁하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옷보다 몸이 더 중요하고, 몸보다 영혼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신다고 하십니다. 우리 몸은 자연과 동질성을 가지며, 한편 우리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세계를 회복하기 원하십니다. 자연만물을 회복하시기 원합니다. 처음 사람 아담의 지위와 생명을 회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소멸하시고 새롭게 지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인류를 사랑하시므로 인류의 자주성에 의한 회복을 계획하신 것입니다. 악을 이기고 승리한 인류를 원하시는 것이지요.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일원으로 오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구원의 근본 목적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구원목적을 따라 우리 영혼이 하나님 앞에 회복을 얻는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질병 그 자체는 사고로 다치거나 병원균의 침입 등으로 신체와 정신기능이 고장을 일으킨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나 질병이 발생하기 까지는 대개는 섭생의 부주의 즉 자신을 관리하는데 실패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 관리실패의 원인은 삶의 방식에 문제가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삶의 조건들...! 또 그 삶의 방식의 원인은 마음에 있습니다. 또 그 마음의 원인은 그 영혼에 있습니다. 먼저 영혼을 고치는 일 그것이 하나님의 치료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입장이 되었다고 가정하고 그 육체의 질병은 고쳐주었으나 그 영혼을 구하지 못하였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것이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 순서를 거스를 수는 없는 일이지요. 신유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신유는 그렇게 쉽게 겉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고치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먼저 영혼을 고치십니다. 우리의 몸은 어차피 모두가 늙고 병약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닙니까? 몸은 후패하여도 그 영혼이 날마다 새로워 지는일 그것이 신유입니다.
세상 만사에 사람의 일이 있고 하나님의 일이 있습니다. 인간 제반사가 현실적으로 사람의 문제이지 하나님의 문제는 아니지요. 하나님은 세상사에 섭리하시며, 사람의 일에 도움을 주실 때에도 그냥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주성을 고려하십니다. 오히려 자주성을 키우시는 방법으로 도움을 주십니다. 마치 사자가 그 새끼를 훈련시키듯이, 독수리가 그 새끼를 훈련시키듯이 도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 스스로 최대한의 노력을 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분명 스스로 일어서며 고쳐나갈 수 있는 것을 스스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하도록 독려하시고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라의 약속을 세우시고 신실하게 지키시는, - 구원언약을 이루시는 일 그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문제는 먼저 사람이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건강 관리에 관하여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신유에는 또 하나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침을 주심으로 인해 복음을 전파하시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거의 모든 은사가 바로 그 전도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성경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삼: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이르를 자가 없느니라."(요 1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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