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逐邪) 사역자가 갖추어야 할 자세 당신은 왜 축사(逐邪) 사역자가 되었습니까? 나는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확실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내가 바라거나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자주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에 당신이 창밖으로 땅바닥을 내다 본다면 내가 이 사역을 하기 위해서 끌려 다닐 때 나의 발가락들로 인해서 생긴 고랑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이 특별한 사역에 그냥 부르신 것이 아니라 나를 억지로 그 속으로 밀어넣으셨다! 마태복음 9장 3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추수하는 주인에게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직역하자면 그가 일꾼들을 “밀어내다”또는 “강요하다”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그 부르심”을 체험한 방법이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묻지 아니하시고 명령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히13:8)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내가 성령 세례를 체험했을 때 기적은 열두 사도들이 죽었을 때나 정경이 완성되어졌을 때 끝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기적들은 오늘날을 위한 것이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우리는 마귀를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정복하셨기 때문이다. 두려움 없이 악한 정사와 권세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사탄들에게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힘도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탄은 거짓말쟁이요, 속이는 자요, 강탈하는 자요, 침입하는 자요, 도둑이다. 예수께서는 이미 그에게 심판하셨다(요16:11). 이제는 그러한 심판을 행하는 것은 교회의 책임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의 권위와 그가 흘리신 보혈의 권능으로 마귀들에게 대항할 때에 그들은 항복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무장이 해제된 적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눅11:22). 그는 이제 자신을 방어할 수도 없다. 크리스천이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 사역자에게 개인적으로 요구되는 것들 시간 : 축사(逐邪)는 매우 시간이 소비되는 사역이다. 이것은 한 사람에게 소비되어지는 시간의 양과 또한 한 사역자가 감당해야 할 많은 수의 사람들을 생각할 때 분명해지는 사실이다. 오늘날 축사(逐邪) 사역을 위하여 이와 같은 많은 시간이 요구되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사역에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 이유를 곧 이해하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막7:24) 정력 : 때로는 축사(逐邪)사역자는 오랜 시간 동안에 사역을 해야만 한다. 우리 팀은 수도 없이 한밤중까지 사역을 했으며 그래도 우리를 만나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때때로 우리는 일주일 이상 하루에 열여섯 시간씩 사역을 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추가적인 힘을 받았다. 그러나 축사(逐邪) 사역자들도 예수님이나 그의 제자들과 같이 휴식을 취해야만 한다. (막6:31) 인내 : 항상 자기들의 축사(逐邪)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매우는 데도 더디고 반복적으로 가르치고 격려해 주어야만 한다. 그럴 때에는 보다 장래성이 보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시간을 소비하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더디 배우는 자들에게도 인내심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다.
사역자는 헌신적이어야 한다 이미 이러한 사역에 참여하고 있거나 또는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완전한 헌신을 목표로 삼고 있어야 한다. 자신을 그리스도와 다른 사람에게 헌신해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미친 소년을 마귀에게서 구출하려는 시도에 실패했을 때 그들은 자기들의 실패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그들에게 해답을 제시해 주셨다. “…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마17:17)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 단어는 문자적으로 신실하지 못하거나 끈기가 없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완전하게 헌신하지 못했다는 책망을 받았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그들을 “패역한 세대”라고 부르셨다. “패역”이라는 단어는 여기서 올바른 길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이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보다도 다른 일들에 관해서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마가복음의 병행기사에서 우리는 제자들이 그들 중에서 누가 가장 큰자인지 논쟁한 사실을 읽어볼 수가 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신실하지 못하고 올바른 길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신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능력이 없었던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사랑과 지혜 사역자는 또한 다른 사람들을 진정으로 동정해야 한다. 축사(逐邪)사역자는 사랑의 진실을 보여줄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을 갖게 될 것이다. 그는 기꺼이 십 리를 더 가고 왼 빰을 돌려대야만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적절한 사역을 체험하게 하기 위해서 때로는 그들을 오랜 기간 동안 우리의 가정에서 머무르도록 초대해야만 할 필요도 있다. 이것은 사랑과 지혜를 필요로 한다. 사람에 대한 사랑을 마귀의 압력에 대한 복종으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에게서 마귀가 떠나가고 난 후에 그는 그 자신의 인격과 마귀들을 구별해 주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감사할 것이다. 비난받을 일이 없어야 한다 축사(逐邪) 사역자는 먼저 자신이 마귀로부터 자유로와야만 한다. 만약에 그가 스스로 필요한 축사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는 내적인 거부와 갈등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이 그의 효능을 심각하게 방해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짐을 지라 축사(逐邪) 사역자는 사악한 행동과 자세들에 관한 많은 나쁜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그는 교회 내에서 존경받는 지도자들과 그리고 또 자기들의 내적 갈등이나 실패들을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사역하게 된다. 이럴 때에 그는 자신감과 사랑 가운데서 사역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지고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해야 한다. 자기가 들은 말이 그 사람과의 인간관계에 영향을 주게 해서는 안 된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용서하신 죄악들을 기억해서는 안 되며 축사(逐邪)를 통해서 깨끗해진 흉칙함에 대해서 생각해서도 안 된다. 기도와 금식 예수님께서는 어떤 형태의 마귀들은 다른 마귀들보다 더욱 강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셨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 이런 유(類)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막9:29) 제자들은 젊은이에게서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는 데 실패했다. 본질적으로 예수님은 그들의 실패를 영적인 헌신의 부족 탓으로 돌렸다. 우리도 역시 동일한 이유로 실패할 수 있다. 예수님은 그들의 영적인 상태의 치료책으로 기도와 금식을 권하셨다. 오늘날 교회에 금식의 개념이 회복되어지고 있다. 금식은 하나님의 권능을 기도하는 방법이 아니라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아, 이 땅 위에 있는 것들이 아니라 위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게 하는 방법이다. 금식과 기도없이는 모든 적들에게 대응할 수 있는 영적인 힘을 개발할 수 없다. 축복과 유익 축사(逐邪) 사역자는 항상 어려움을 당하고 희생적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말아야만 한다. 그러나 그에게도 많은 축복과 유익들이 있다. 기쁨을 느끼는 경우도 많이 있다. 축사(逐邪) 사역 그 자체가 예배와 찬양을 드릴 수 있는 기회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적을 찌르는 “성령의 검”이기 때문이다. 가르치고, 바로잡고, 훈계하고, 권고하는 데에 많은 성경 구절들이 사용되어진다. 그리고 지혜 가운데 기도하고 성령 안에서 기도해애 한다. 간구의 기도, 중보의 기도,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그리스도와 그의 희생을 칭송하는 노래를 부르고 찬양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 포로들이 해방되어지는 기쁨이 있고 점점 높아지는 찬양의 소리 가운데서 승리의 감정이 이루어질 때 적의 저항을 분쇄하는 힘이 생긴다. 예수님은 더욱 높아지고 주의 종들은 힘을 얻고 신념을 갖게 된다. 사역을 통해 얻은 영적 통찰력은 나에게 찾아온 가장 큰 축복들 중의 하나이다. 나는 빛과 어두움의 영역 사이에 날카로운 경계선을 발견했다. 사탄의 계략을 더욱 쉽게 분별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 앞에서 의의 길이 이전보다 더욱 분명해졌다. 다른 사람들과 육적인 갈등을 피하고 하늘의 전투를 하는 것이 더욱 쉬워졌다. |